기독교의 박해
박해, 이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는데, 그것은 유대적 유산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죽음으로 순교자가 되겠다는 것은 로마에 대한 유대인들의 지배적인 생각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공적으로는 용납했다. 그러나 그들의 응집력, 비협조, 불가사의한 재정적 성공으로 인해 그들의 증오와 박해가 간헐적으로 확산되었다. 즉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는 먼저 유대인들에게서 시작되었다.
스데반 이후로 시작된 처음 박해는 헛된 것이었다(행 6:14;8:16). AD 44년에 야고보는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처형당했고(행 12:1,2), AD 80년에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공적으로 추방되었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 여행에 대한 유대 지도자들의 방해를 계속 극복했다.
처음에 로마의 권력자들은 새로운 종교를 허용했지만, 이것은 곧 극심한 반대로 변했다.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드러나지 않자, 그들을 죽이려고 네로는 AD 64년에 도시에 불을 질렀다. AD 112년까지 비두니아 주에서 기독교 신앙을 지키는 것은, 트라야누스 황제가 화형을 시키는 '마녀 사냥'을 당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형에 처할 정도의 죄였다.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성찬식과 '예찬식'을 오해하여) 사람 고기를 먹은 죄, 근친 상간, 마술, 불법 집회, 황제 숭배 거부 등으로 박해를 당했다. 벧전 2:12;4:14이하와 기타 다른 후기의 저술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비록 그 신앙을 제국 전체에서 금하는 법이 있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지만, 큰 죄를 범하는 것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박해는 아마도 각 지역의 총독들에게 달려 있었던 것 같다(참고. 행 18:14이하에서 갈리오 총독의 박해에 대한 거부). 그래서 터툴리안은 2세기에 황제가 아닌 총독에 대한 변론(Apology)을 썼던 것이다. 총독들은 보통 종교적인 견해가 아닌 진정한 죄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공적이고 표면적인 고소만 받아들였고, 그래서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확고히 설 때까지 보호될 수 있 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