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본 서신서는 사도 베드로의 이름으로 보낸 것으로 1:1과 5:1에 나타나 있다. 이것은 또한 실라의 도움을 받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난다(5:12).
벧전 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벧전 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벧전 5: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다섯 개의 주(州)에 대한 언급(1:1)은 신약에서는 가장 광대한 것이다.
• 베드로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 참조
https://mybiblenotes.tistory.com/m/859
• 베드로전서의 내용.
문안인사(1:1,2);
감사(1:3-12);
구원의 의미(1:13-2:10);
그리스도인의 관계(2:11-3:12);
고통과 하나님의 뜻(3:13-22);
거룩한 삶(4:1-11);
고통의 시련(4:12-19);
장로들에 대한 언급(5:1-4);
일반적인 언급, 축복, 개인적인 인사(5:5-14).
• 베드로전서의 저작권과 기록 장소.
의심할 것도 없이 이것은 폴리캅과 파피아스에 의해 사용되었으며(AD 2세기 초), 2세기 중엽에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교회에 알려졌다. 이 서신서는 베드로 외에 다른 사람이 썼다는 암시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에는 바벨론에서 전하는 문안 인사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로마에 대한 암호문일 것이다(참고. 계 14:8;17:5).
계 14: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본 서신서의 헬라어는 문체가 좋고 리듬이 있으며, 꾸밈이 없고 세밀하다. 또한 어떤 문법적인 특징들은 셈어(히브리어나 아람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구약의 인용들은 70인역을 따랐는데, 이는 본서 저자가 그것에 익숙하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이런 까닭으로 일부 학자들은 아람어를 사용하는 갈릴이 사람이 본서를 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헬라어는 당시 널리 이해되고 통용되었다.
베드로의 동생은 헬라 이름을 가졌고, 이방 지역에서 태어난 베드로는 헬라어에 익숙했을 것이다. 또한 70인역은 대부분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사용된 구약의 '권위 있는 번역본'이다. 이것은 또한 실라의 영향을 받은 듯하며, 실라는 예루살렘 공의회에 미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선택된 것(행 15:22이하)으로 보아 분명히 말에 능숙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행 15: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베드로전서, 마가복음(베드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는), 사도행전의 초기 연설들 사이에는 언어와 사상에서 중요한 일치점이 있다. 모두가 고통받는 종으로서 주님을 언급하고 있으며, 다른 곳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중심 주제가 막 10:45과 벧전 1:18에 나타난다. 그리고 예언의 수행(행 2:16이하;벧전 1:10이하), 회개와 신앙-세례의 연결(행 2:38,40;벧전 3:20이하), 유대적 관점에서 표현된 이방선교에 대한 인식(행 10:9이하;벧전 1:1-12;2:3-10)을 동일하게 강조하고 있다. 또한 베드로전서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회상하며 언급하고 있다(예. 벧전 1:16=마 5:48).
벧전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베드로전서의 역사적 배경과 기록 시기.
박해에 대한 언급이 네 번 나타난다. 두 번은 이미 당하고 있는 시련을 가리키며(1:6,7;3:13-17) 다른 두 번은 임박해 있고 더 심각한 시련을 가리킨다(4:12-19;5:9). 4:12이하에 있는 그릇 행하므로 당하는 고통과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 사이의 차이는, 비두니아-폰투스의 총독 플리니가 AD 110-111년경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내는 편지와 비교하도록 흥미를 끈다. 총독들은 그리스도인들이 황제의 신상에 절하면 용서해 주었고, 그렇지 않으면 형을 집행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황제 숭배 거부를 보고했다.
이런 연유로 일부 학자들은 베드로전서가 이 때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전에 네로와 도미티안에 의해 행해진 박해는 지엽적으로 행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리니의 정책이 베드로가 본 서신서를 전한 지역에서 시행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대한 플리니의 관심과 베드로전서에 나타난 예수라는 이름에 관한 강조 사이의 일치점은 사도 시대 초기의 '이름'의 중요성으로 가장 잘 설명된다(예. 행 3:6;4:12).
행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베드로가 대단히 극심한 시련이 계속되던 네로 박해 시대에 로마에서 죽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러므로 본 서신서는 AD 63-64년경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한 네로의 박해 직전이나 직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마도 바울이 자신의 동료 실라와 마가를 로마에 남겨 놓고 죽은 후였을 것이다.
• 베드로전서의 성격과 목적.
바울 신학과 베드로전서는 매우 긴밀하게 일치한다. 또한 베드로전서는 로마서, 에베소서, 히브리서, 야고보서를 포함한 신약의 다른 저서들과 문학적 유사점도 갖고 있다. 개심자에 대한 동일한 가르침의 유형이 특별히 베드로전서, 야고보서, 에베소서에 나타난다. 옛 생활을 버릴 것(벧전 2:1,11);겸손하고 이기심에서 벗어날 것(2:11-3:9);깨어서 기도할 것(4:7;5:8);마귀와 맞서 싸울 것(5:8,9)등의 요구가 있다. 이 때문에 베드로전서는 때때로 세례에 관한 설교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들을 지지하는 상당히 많은 세부 사항들이 의문시되었다. 본 서신서에서는 세례에 대한 강조가 강하게 나타나지 않으며, 이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한 번 있을 따름이다(3:21). 그리고 베드로전서에서 그리스도인의 경험에 대한 예표로서 출애굽기가 사용된 것은 세례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단순히 개심자에게 생기는 영적과도기를 강조한 것일 수도 있다. 베드로전서는 고통에 직면했을 때 용기를 복돋우는 일반적인 편지라고 보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