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르앗'(Gilead)은 요단강 동북쪽이며, '바실래'(Barzillai)는 이곳의 대부호(大富濠)였다(17:27). 그는 다윗 왕이 압살롬에게 쫓겨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 소비와 마길과 더불어 다윗 왕을 후원한 사람이었다(17:27-29).
삼하 17:27-29/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뻐더와 양과 치스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 함께한 백성으로 먹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함께 요단에 이르니 - 여기서 '이르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바르'는 '건너다', '통과하다'란 뜻이다(18:9; 창 15:17; 32:10; 민 32:21; 신 29:16; 욥 17:11; 잠 24:30; 렘 48:32). 따라서 본 구절은 바실래가 다윗 왕을 전송하는 과정에서, 왕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넜음을 미리 보여주는 말이다(36절).
마하나임에 유할 때에 왕을 공궤하였더라 - 여기서 '공궤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쿨'은 `떠받치다', `유지하다','제공하다' 등의 뜻으로, 특별히 물질적인 필요를 제공해 주는 행위를 가리킨다. 즉 이는 길르앗의 거부 바실래가 다윗 왕이 마하나임에 피신해 있는 동안 내내 왕과 그의 일행들을 공궤하였다는 말이다.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 그동안 자기를 공궤해 준 바실래에게 보답하겠다는 다윗 왕의 말이다.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삽관대...올라가리이까" - 이는 노령(老齡)을 이유로 다윗의 보은(報恩)을 겸손히 사양하는 바실래의 대답이다. 이처럼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겸손하며, 결코 모남이 없는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는 나이에 구애됨 없이 그 삶이 향기롭다. 특히 여기 등장한 바실래는 부자들이 흔히 범하는 교만(삼상 25:9-38)과 무관한자로서, 곤경에 처해 있던 다윗을 위문한 일이있다(17:27-29). 더욱이 그때의 선행은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단지 도움이 필요한 자를 도운 순수한 행위였다(전 11:1). 한편 바실래의 거절을 통해 우리는 늙음과 죽음이 가져다 주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배우게 된다. 인간의 생명에는 그 연한이 있으며(시90:10), 기력은 반드시 쇠할 수 밖에 없다(전12:3-8).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하며 온전한 인격을 지닌 자의 늙음과 죽음은 결코 추하지 않다(욥 12:12; 시 92:14,15; 잠 16:31; 20:29)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 이는 선악(善惡) 간에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말이다(왕상 3:9; 겔 44:23; 사 59:2; 욘4:11). 즉, 여기서 바실래는 자기는 이미 노령으로 판단력을 상실해 버렸기때문에, 다윗 왕의 유능한 모사(謨士)가 될 수없는 처지임을 말씀드린 것이다(Lange).
"음식의 맛을...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 여기서 바실래는 화려한 궁중 생활이 육체적감각이 둔한 늙은이인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어늘" - 바실래는 왕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넌 목적에 대하여 분명히 밝힌다. 즉, 그 목적은 왕의 상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왕을 배웅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바실래나 이러한 그의 목적을 `작은 일'이라고 표현하였다(한글 개역 성경에는 그 뜻이 명확하게 번역되지 아니하였다). 한편 후자들은 바실래가 왕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너지 않고 요단동편에서 왕과 헤어졌다고 주장하나(Hertzberg, Pulpit Commentary), 이러한 주장은 본 구절의 내용과 상반되므로 지지할 수 없다(Lange).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 즉 고향에서 여생을 살다가, 가족의 장지(葬地)에 묻히고 싶다는 노거부(老巨富)의 바램이다. 이처럼 히브리인들은 특히 열조의 묘를 중시했다(창 49:29-31;50:25). 즉 히브리인들은 조상의 묘 곁에 함께 묻힘으로써, 사후에도 조상들과 연관 되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바실래도 자신의 최후 안식처가 부모의 묘 곁이기를 원했던 것이다.
김함(Chimham)
성경에는 `김함'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으나, 왕상2:7로 추추컨대 아마도 그는 다윗 왕을 전송하기 위해 부친 바실래와 함께 내려온 바실래의아들인 듯하다(Josephus, 70인역). 그렇다면 여기서 바실래는 다윗 왕의 호의에 감사하여 자신의 삶을 계속 이어나갈 아들 `김함'을 대신 다윗 왕에게 부탁함으로써, 다윗의 따뜻한 배려를 받아들인 것이다.
"내가 너의 좋아하는대로 저에게 베풀겠고" - 다윗 왕은 다른 왕자들에게 하듯이, 바실래의 호의(17:27-20)를 생각하여 김함에게도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토지를 선사하였던 것 같다(Smith). 한편 렘 41:17을 보면, 베들레헴 근처에 `게롯김함', 곧 '김함의 숙소'가 있었는데, 이곳은 애굽으로 가는 여행객이나 또는 대상(隊商)들이 잠시 묵고 가는 여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후일 바로 이러한 여관에 요셉과 마리아가 일시 지냈다고 한다(눅2:7; Stanley, Jewish church, 2.201).
눅 2:4-7/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이외에도 다윗 왕은 임종시에 김함의 안전을 특별히 솔로몬에게 부탁함으로써, 바실래의 호의에 대한보답을 끝까지 잊지 않았다(왕상 2:7).
왕상 2:7/ 마땅히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한편 다윗왕과 바실래는 입을 맞추며 아쉬운 석별(惜別)의 정을 나눈다(룻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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