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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므비보셋의 아름다운 이야기

by 소소한행복^^ 2022.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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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비보셋'(Mephibosheth)의 뜻은 '부끄러움을 없애 버리는 자'이다. 그런데 다른 성경에 보면, 그의 본명은 '므립바알'(Meribbaal)인 것으로 나와 있다(대상 8:34;9:40). '므립바알'은 곧 '바알로 만족하는 자'란 뜻이다. 따라서 이같은 이름이 므비보셋으로 바뀌게 된 동기는 아마 에스바알이 이스보셋으로 바뀐 그것과 똑같을 것이다. 즉 바알 우상 숭배와 관련'바알'이란 이름을 혐오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이름 속에 철저히 '바알'이란 말을 배격한 것이다(Keil & Delitzsch,Lange).


삼하 4:4/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절뚝발이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의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 나이 다섯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하더니 급히 도망하므로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절뚝발이 아들...므비보셋"
한편,여기에서 저자가 므비보셋의 신상을 자세히 소개한 이유에 대하여선 다음과 같은 두 견해가 있다. (1)단순히 뒤에 벌어질 사건(9장)의 배경을 보여 주기 위해 기록되었다는 견해이다(Rust). 이 견해는 므비보셋의 불구 상태(절뚝발이 상태)가 사울가의 몰락(이스보셋의 죽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2)사울가의 완전한 몰락을 보여 주기 위해 기록하였다는 견해이다(Keil & Delitzsch,Matthew Henry,Hertzberg,Pulpit Commentary). 즉 이스보셋이 죽은 후(5-7절)에 사울가의 유일한 후계자로 므비보셋이 남으나, 그는 절름발이어서 도저히 왕위를 계승할 수 없는 부적격자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사울가는 실질적으로 완전히 몰락했음을 본 구절이 보여준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사무엘하 1-4장까지의 문맥이 다윗가의 흥왕과 사울가의 몰락을 다루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 근거해 볼 때 위 두 견해 중 두번째 견해가 보다 타당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다섯살때에 사울과 요나단의 전사 소식을 듣고서 급히 도망하던 유모의 팔에서 떨어져 불행히도 절뚝발이가 되었었다(삼하 4:4). 아마도 블레셋군의 승전(勝戰)소식을 접한 므비보셋의 유모는 블레셋인들이 사울 왕가를 멸절시킬 목적으로 므비보셋마저 제거할 군사를 보내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심각한 위기 의식에 젖어 므비보셋을 안고 은신처를 찾아 도피하였을 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464).

므비보셋이 절뚝발이란 사실을 계속해서 언급하는 것은 더 이상 사울 가문에 희망이 없음을 의미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므비보셋이 절뚝발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친아들처럼 사랑한 다윗의 사랑과 인격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는 오늘날영적 절뚝발이와 같은 우리들에게도 그리스도와의 언약을 기억하고선 영생의 축복을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시사해 주기에 충분하다(사 36:5;렘 31:8;요 3:16; 엡2:12, 13;히 12:12).

다윗과 므비보셋의 이야기는 압살롬의 반역을 계기로 더욱 아름답게 펼쳐진다.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서 왕을 맞으니 저는 왕의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삼하 19:24)

므비보셋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다윗 왕을 맞을 때에 다윗 왕은 므비보셋 자신과 함께 하지 않은 것을 책망한다.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이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나의 종이 나를 속이고 종 나를 내 주 왕께 참소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삼하 19:26-27)

므비보셋은 자기를 가리켜 다윗의 종(주의 종)이라고 겸허한 자세를 취하였다. 여기서 '종'이란 이미 앞에서 나온 '에베드'로 '노예'를 의미한다. 즉 므비보셋은 다윗에 대하여 자신을 노예와 같이 완전히 자유가 없는자로 칭하였던 것이다.

왕위에 오르면 일단 정적(政敵)과 그 일가 친족들을 모조리 진멸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한 일반적 관례이다. 따라서 므비보셋은 그 같은 관습에 따라 다윗 왕이 자기를 죽이지 않을까 염려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므비보셋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려고 "무서워 말라"고 다윗의 애정어린 분부를 한다.

또한 다윗은 므비보셋애게 특별한 은총을 베푼다.

첫째는 사울의 밭을 다 므비보셋에게 도로 준다. 사울의 밭은 기브아에 있던 그의 사유지를 의미하는데(삼상 10:26) 아마도 "다 돌려 준다"는 이 말은 그 동안 시바가 관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다윗의 이러한 약속은 간교한 시바에게는 큰 실망거리였겠으나 마길의 집에 숨어 살던 므비보셋에게는 더 없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둘째는 다윗의 상에서 먹게 한다. 이말의 의미는 이중적으로 볼 수 있다. 즉, 이말은 말 그대로 다윗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은 또한 상호간의 아름다운 교제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시 69:22;128:3;단 11:27). 따라서 이 말은 다윗과 므비보셋이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서로 아름다운 교제의 왕래가 있을 것을 뜻하기도 한다(Rust).

이에 대해 므비보셋은 "죽은 개 같은 나"라고 표현한다. 유대인들은 개를 멸시하였다(출 22:31;삼상 17:43;24:14;왕하8:13;시 22:16, 20). 더구나 '죽은 개'란 시체를 의미하는데 모세 율법에서 시체는 아주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여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레 22:4). 따라서 본절은 가장 보기싫고 하찮은 인간을 비유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므비보셋이 자신을 극도로 비하시켜 표현한 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1)다윗 왕의 큰 은혜에 감격하였기 때문이다. (2)또한 그 자신이 다윗 왕의 은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이다(Keil, L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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