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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들의 유전과 탈무드

by 소소한행복^^ 202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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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은 좋은 것이다. 유대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나라도 없이 나그네처럼 이방인처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았어도 그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것은 그들만의 전통을 잊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본받을 면인가.  그러나 전통(유전)을 절대시하는 것은 소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원뜻을 말살시키는 악행이 될 수도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고수할 것은 철저히 고수하되 버릴 것은 버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며 참 신앙의 본질인 정신을 앓지 않으면서도 형식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 장로들의 유전(the tradition of the elders)
여기서 먼저 '장로들'(τῶν πρεσβύτερος 톤 프레스뷔테론)이란 문자적으로는 연세가 많은 어른들을 일컫지만 구중에서도 특별히 율법에 능통한 자나 랍비 등의 종교 지도자를 가릴킬 때 흔히 사용되었다. 이들은 율법 해석의 권위를 공적으로 인정받았는데 일르의 해석은 구전(口傳)으로 이어져 왔으며, 그러한 해석이 기록된 율법보다 더 존중되었다. 여기서 '유전'(παράδοσις 파라도시스)이란 '넘겨주다', '전해주다'는 뜻의 원어 '파라디도미'에서 유래한 말로서 조상적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는 일종의 행위법(行爲法)을 가리킨다. 이러한 행위법은 '장로들의 육전'이란 말 외에 '사람의 유전'(막 7:8; 골 2:8), '너희의 유전'(15:3)', '조상들의 유전'(갈 1:14)등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갈 1: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 탈무드(Talmud)와 장로들의 유전
한편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오경에 기록된 것 이외에도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로 주신 구전 율법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유대교에서는 성경 율법은 원리만을 가르치기 때문에 세세하고 복잡한 현실 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상세한 규범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바벧론 포로 생활 이후부터 유명한 유대교 랍비들이 고대의 전승 자료들을 중심으로하여 세세한 생활규칙들을 정비, 집성(集成)하기 시작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장로들의 유전이었다(Rabbi Judah the Prince C. A. D. 135-200). B. C. 300-A. D. 800년 사이에 이런 구전 율법을 집대성하여 문서화한 것이 바로 탈무드(Talmud)이다. 탈무드는 내용상 (1) 율법의 세부 규정을 담은 '미쉬나'(반복이라는 뜻)와 (2) 율법 규정의 교훈적 풀이 곧 미쉬나의 주석서격인 '게마라'(보완이라는 뜻) 등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고 그 문체면에서는 (1) 법 규정을 다루는 '할라카'(규범이라는 뜻)와 (2) 각종 이야기를 통한 지혜와 훈계를 주는 '학가다'(이야기) 등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또 본래 탈무드라는 것이 구전, 곧 입으로 전해져 오던 율법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그 편집자에 따라 약간씩 내용상 차이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 가운데서 현재 유명한 탈무드로는 '바벧론 탈무드'와 '예루살렘 탈무드'가 있다. 특히 매우 미미(微微)한 점에 이르기 까지 상세히 사람의 행위를 규제한 '할라카'는 율법 주위에 둘러쳐진 '울타리'라는 뜻으로서 일부는 모세로부터 개개인에 의해 전래되었고, 일부는 모세의 기록에 기초한 규칙으로서 전부 613개에 달하였다고 한다.


• 장로들의 유전의 덫
장로들의 유전은 외형상 별 문제가 없는 듯이 보이지만 그러나 인간의 생각을 하나님의 계시와 동일한 수준으로 생각하였다는 점과, 율법의 목적과 그 정신을 저버리고 외형적인 세부 규칙들을 번거로울 정도로 상세히 규정해 놓음으로써 결과적 으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순종과 사랑을 버리고 인간의 위선과 교만으로 나아갔다고 하는 점에서 장로들의 유전은 치명적 오류를 범했다. 따라서 비록 탈무드가 여호와 신앙이라는 대전제하에 쓰여진 것이기는 하지만 분명한 유대교적 한계를 갖고 있으므로 이를 명확히 파악하고 대해야 할 것이다.


•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이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유전에 대한 신학적 농쟁이 계기가 된 말이다. 식사 때에 손을 씻는 예법(禮法)은 먼지가 많은 팔레스틴의 풍토와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풍속에 의해 위생(衛生)적 필요에서 마련 되었다. 또 한편은 이방인들과의 모든 접촉, 예를 들어 길이나 시장에서 이방인들과 스치거나 이방인의 물건에 무의식적으로 닿는 일 따위는 성전이나 회당에서의 예배에 의시적인 장애가 된다고 생각한데서 나온 장로들의 유전이었다. '야다임'(Yadaim)이라는 소책자응 효과적인 정결 의식을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물을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상술하고 있는 '손'(hands)에 관한 행위법을 다룬 책자이다. 그 내용의 일부를 보면 '만일 한 사람이 한 그릇의 물로 한쪽 손에 붓는다면 그의 손은 정결하다. 그런데 만일 한 그릇의 물을 두 손에 붓는다면 그 손이 불결하나 1/4통 이상의 물을 더 붓는다면 그의 손은 정결케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 어찌하여...범하느뇨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마 15:3)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과 장로들의 유전과의 근본적인 권위의 차이를 분명하게 지적하시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에 의해 제기된 문제를 계기로 삼아 여호와 신앙의 정수(essence)를 선언하셨는데 이는 율법을 인위적으로 해석한 유전보다는 하나님의 계명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형식보다는 내용을, 율법의 의식보다는 그 정신을 더욱 더 증요시하시는 것이다. 실로 유전의 형식을 어기는 것이 부차적인 일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계명의 정신을 어기는 일은 근원적인 죄악의 문제인 것이다. 특별히 여기서 '범하느뇨'에 해당하는 원어 'παραβαίνω 파라바이네테'는 '곁에(besides)'라는 뜻의 'παρά 파라'와 '걷다'는 뜻의 'βαίνω 바이노'의 합성어로서의 정도(政道)를 벗어나 '곁길로 빗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장로들의 유전은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벗어나 곁길로 가게하는 오류(誤謬)를 포함하고 있다는 강렬한 질책으로 볼 수 있다.


• 하나님의 맡씀을 폐하도다
"....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 15:6)

여기서 먼저 '폐하는도다'(ἠκυρώσατε 에퀴로사테)는 말은 '권리를 빼앗다'라는 의미의 법률 용어로서 어떤 명령이나 유언을 취소 또는 무효화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3절의 '범하느뇨'라는 말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강렬한 범죄상을 일컫는 말이다. 즉 조상의 유전을 절대시하는 것은 소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원뜻을 말살시키는 악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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