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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거하라

by 소소한행복^^ 202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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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4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으로서의 명령을 대하게  된다. 물론 자연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포도나무의 가지는 자체의 의지를 발휘하여 그 안에 거하느냐 거하지 않느냐를 임의로 결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영적인 면에서는 제자 편에서의 의지의 명확한 행동이 있다. 그리스도의 메이나 테엔 에모이(μείνατε ἐν ἐμοί, 내 안에 거하라)란 명령의 말씀에서 우리는 역설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이 말씀을 듣는 자의 편에 책앰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자기 안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자기 밖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예수의 단순한 말씀은 진리이다(요 15:5). 이러한 종속적인 관계는 신약 전체를 통하여 발견된다. 그리스도는 일찌기 참되고 진정한 관계를 묘사하는 상호적인 책임에 대해 가르치셨다(요 6:56;15:4). 그리스도는 가지들이 열매를 맺도록 생명을 공급할 뿐 아니라 그가 바로 생명의 기원이며 원천이시다.(요 1:3)

요한일서 2:5에서 저자는 "저 안에 있는"이란 말로써 그리스도와의 생생한 연합에 대해 말한다. 이러한 표현은 엔 크리스토 에이나이(그리스도 안에 거하라)란 바울의 사상과 유사하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아주 오래지체되고 있던 1세기 말엽에 '그리스도 안에 거함'이란 이런 생생한 관계는 잠깐 머무르는 것보다는 장기간의 거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신자의 맥박이나 다름없다.


헬라어로 '거하다'는 메노(μένω)이다. 우리는 이 말을 장소, 때와 상황에 관련하여 각각 다르게 적용시킴으로써 신약과 사본들에서의 이 단어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단어가 장소에 관련해서는 '손님으로서 체류하다, 묵다, 머무르다, 손상되지 않은 친교를 유지하다'를 의미한다. 때에 관련해서는 '계속하여 있다, 지속하다, 잔존하다'를 의미한다. 상황에 관련해서는 '사람이 ...이다'라고 할 때처럼 '여전히  ...이다'를 의미한다(Arndt, MM, Grenfell and Hunt, Oxyrbyncbus Papyri). 칠십인역을  보면 16개 이상의 히브리어 단어가 헬라어의 메노(거하다)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중요한 히브리어는 다음과 같다. (1) 야사브(ישׁב)-살다, 거하다, 앉다. (2) 아마드(עמד)-서다, 머무르다. (3) 쿰(קוּם)-일어나다. (4) 린(לוּן)-묵다, 체재하다, 밤을 보내다. 칠십인역에서의 예로는 다음과 몇개만으로도 족할 것이다.:"소녀로 ... 우리와 함께 있게 하라"(창 24:55). "보라, 역병이 그 앞에 남아있다(있다 혹은 억제되어 있다)"(레 13:5), "오직 주의 계획이 영원히 남느니라(서느니라 혹은 일어나느니라)"(잠 19:21).
  
이 외 구약에선의 용법으로는 '전쟁중에 꿋꿋이 서다' 혹은 '확신으로  거하다'가 있다.(LSJ)
    
신약에서 이 동사는 타동사와 자동사로 쓰인다. 타동사로 쓰일 때는  '기다리다, ...을 위해 준비하다, ...에 저항하다, 혹은 견디다'를 의미한다(렘 10:10;말  3:2;행 20:23;히 13:14 참조). 자동사로는 '사람이 현재 처해 있는 장소나 나라에 체재하다, 머무르다, 주재하다, 특별히 시련에 직면하여 오래 견디다'를  의미한다(눅  8:27;행 27:31;요 15:5;고전 3:14 참조). 이 단어는 신약에서 적어도 아홉 개의 전치사와  함께 쓰인다.
    

컨콜던스(MG)에 나온 것을 보면 메노가 신약에서 약 118회 사용된다. 특별히 사도 요한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데 요한복음에서 40번, 요한 서신에 26번 나온다. 이 압도적인 사용에 대해서 이것의 용법을 이 위대한 사도에 의해 고찰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 단어가 요한복음 15장의 가르침에서 매우 중요하게 사용된다.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는 도중에 그는 제자들에게,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드시어 자기 안에 거하는 것이 절대 필요함을 가르치셨다. 포도나무에 있어 본 줄기와의 유기적인 결합이 가지들에게는 생명을 의미한다. 이 비유는 그리스도와 신자들간에 존재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결합에 대해서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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