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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

by 소소한행복^^ 2023.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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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정의

'계시'(ἀποκάλυψις 아포칼립시스: 벗김, 밝힘)란 말은 요한계시록 1:1에서 온 것으로 거기서 이 말은 승천하신 예수께서 요한에게 나타내신 시대 종말에 대한 계시에 관련되어 있다.

☆ 아포칼립시스는 ἀποκαλύπτω(아포칼립토)에서 파생된 단어로 "가려지거나 가려진 것을 드러내다, 드러내다", "폭로하다",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알리다, 나타내다, 공개하다"의 뜻을 가진다.

현대 학자들이 말을, 문필상으로 유사한 특징과 종말론적인 특징들을 내포하고 있는 일련의 유대인 책들에 적용시켜 왔지만 그중 모두가 실제로 계시는 아니다. 계시는 천상의 비밀들이나, 세상 종말과 하나님 나라의 시작에 수반할 사건들에 대한 실제적이거나 단정적인 계시들을 내포하고 있는 책이다.


II. 역사적 배경

무명의 유대인 저자들이 B.C.200년과 A.D.100년 사이에 다니엘서를 모방하여 많은 계시록을 저작하였다(다니엘서는 종종 그러한 계시록들 중 최초의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러나 다니엘서를 예언서들에 밀접하게 관련시키는 많은 특징들은, 다니엘서가 예언적인 유형과 계시적인 유형 사이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다니엘서를 마카비 시대보다 조기의 것으로 보는 다른 이유들도 있다). 계시들은 역사적이며 신학적인 문제를 포함하는 역사적인 상황에서 야기되었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다.

첫째, '의로운 남은 자'의 출현.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저버리고 계속 우상 숭배에 빠졌다. 그들이 회복된 후에는 율법에 충실했던 여러 집단의 유대인들이 일어났다. B.C.168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유대인들을 강제로 헬라문화와 종교에 동화시키려 할 때 복종하기를 거부한 이들 의인들은 율법에 불순종하기보다는 죽음을 택함으로써 Chasidim 혹은 Hasideans라 불리워졌다. 이러한 정신이 그들의 계승자들인 바리새인들에게서 보전되었다.

'쿰란 사회'라 불리워지는 또 다른 집단은 유대인 생활의 주된 경향으로부터 물러나 광야에서 은신처를 찾아 율법의 연구와 준수에 온전히 헌신하였다.

둘째, 악의 문제.
선지자들은 회복된 이스라엘인 남은 자가 그 나라를 상속하리라고 약속하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그 나라에로 회복되어 율법에 충실하였다. 의에 대한 유대인의 정의에 따라 선지자들이 정한 조건들이 충족되었지만 그러나 그 나라는오지 않았다. 나라는 고사하고 전례없는 고난만이 닥쳐 왔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B.C. 168)가 신자들에게 고통과 순교를 당하게 함으로써 유대인들의 신앙을 멸절시키려고 하였다. 마타비의 반란에 의해 획득된 종교의 자유도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법 대신에 속세적이며 세속적인 Hasmonean들의 법이 왔고 B.C.63년 후에는 로마의 앞잡이들과 관원들의 법이 왔었다. 그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의로운 이스라엘인들은 오직 고난과 정치적인 압제만 받을 뿐이었다.

세째, 예언의 중단.
비할 데 없는 악의 세대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적인 수수께끼를 설명하기 위한 말씀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예언의 음성이 더 이상 들려 오지 않은 것이다.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고 포고한 후, 고난받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의인들이 받는 고난의 수수께끼를 설명하기 위하여 나타나는 선지자는 하나도 없었다.

계시록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야기되어 의인들의 고난과 하나님 나라의 지혜(delay)를 설명해 주었다.

III. 종류

1. 에녹 전서 혹은 이디오피아의 에녹서
이것은 에녹의 환상들과 천국 여행에 대한 기록으로 이루어진 다섯 편의 혼합서이다. 비유들(환상 등을 내포하고 있는 37-71장)은 하늘의 인자의 모습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B.C.2세기의 것 중 최초의 것이다.

2. 50년 절(節)
이것은 천지 창조 시대부터 모세 시대까지 세계 역사에 대해 모세에게 주어진 계시이다. 역사는 각 49년의 회년기들로 분류된다. 이 책 중 극히 적은 부분만이 종말론과 관련되어 있다. B.C.2세기의 책이다.

3. 12족장의 언약
계시가 아니라 예언서들을 모방한 것이다. 여기서 각 족장은 자기 인생을 요약하고 윤리적인 교훈과 그의 자손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종말론적인 것일뿐 계시에 관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저작자들에 의해 대부분 새로운 것들로 추가되었다. B.C.2세기의 것이다.

4. 솔로몬의 시편
이것은 구약의 시편을 모방하여 기록한 18편의 시이다. 이것은 계시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두 편은 중요한 종말론적인 자료를 내포하고 있다. B.C.1세기의 것이다.

5. 모세의 승천
이것은 여호수아에 대한 모세의 마지막 명령서로 여기서 그는 나라의 임함을 위해 역사의 과정을 추적한다. 본서에서 헤롯 대왕 시대까지의 역사가 다루어진다. A.D. 1세기의 것이다.

6. 시빌의 예언
이것은 유대교적인 요소와 기독교적인 요소를 내포한 혼합 변증서이다. 이 예언은 헬라인 시빌이 말한 것으로 이것은 이교 예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극히 적은 대목만이 일종의 계시에 대한 종말론적인 기대를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7. 에스라 4서(에스라 2서)
이것은 예루살렘의 멸망 후 에스라가 바벧론에서 본 일곱 개의 환상을 내포한다. 이것은 A.D.70년 예루살렘의멸망 후 경건한 유대인들의 절망을 반영한다. 이것은 계시적인 종말론은 물론 많은 신학을 구체화한 것으로 계시들 중 가가장 심오한 것이다. 이것은 A.D.1세기 후반기의 것이다.

8. 바룩 계시록
이것은 여고냐 시대에 하나님 나라의 임함에 대해서 바룩에게 주어진 계시이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중요하다. A.D.1세기 후반기의 것이다.

9. 에녹 2서 혹은 슬라브의 에녹
이것도 묵시이긴 하지만 연대적으로 이상의 것들보다 훨씬 후기의 것 같다.


IV. 문학적인 특징

묵시는 예언에 이어지는 문학 양식이다. 어떤 점들에서 묵시는 예언적인 요소들이 발전한 것이며 다른 점들에서 그것은 예언적인 특징과는 다르다. 이 두 양식 사이에 선을 날카롭게 그을 수는 없지만 묵시의 특성은 예언의 그것과 주목할 만하게 다르다.

1. 계시
선지자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자주 계시에 의해 받았지만 그들의 주된 관심은 "주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종종 환상이나 꿈과는 별도로 압도적인 내적 확신으로써 선지자들에게 임하였다. 묵시에 있어 주의 말씀은 계시와 환상에 양보해 왔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에게 그의 영으로 말씀하지 않으신다. 선지자는 악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과그 나라의 임함을 꿈, 환상이나 천사들의 안내에 의한 천국 여행을 통하여 배워야만 한다.

2. 모방적인 문학적 특징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나타내신 경험들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포고하였다. 어떤 초자연적인 요소를 거부하는 학자들도 선지자들의 실제적인 정신적 경험을 인정한다. 에스라 4서는 실제로 주관적인 경험들을 반영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묵시자들의 계시는 보통 문학적인 형식을 취한다.

그들의 환상들을 본받아 문학적인 이야기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묵시록은 기록된 것임에 비하여 예언은 대체로 기록에 앞서 언급되었다.

3. 익명 사용
선지자들은 백성에게 직접 주의 이름으로 말하였다. 그러나 마카비 시대에는 예언의 음성이 중단 상태에 있었으며 묵시자들은 그들 세대에 대한 자신들의 메시자가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그들의 계시를 구약의 성인들에 속한 것으로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다니엘은 두드러진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그에게 돌려지는 계시에 있어 그의 출현을 떠나서는 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4. 상징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종종 상징을 사용하였다. 계시에 있어 상징은 특히, 역사적인 명칭들을 사용하는 일이 없이 역사의 과정을 개설하는 기술로서 주된 필요 수단이 된다. 이러한 기술이 처음으로 다니엘서에 나타나며 이것이 후기 묵시에서 색다른 증식으로 모방되었다.

5. 재기록된 역사
선지자들은 그들의 입장을 그들 자신의 역사적인 상황에서 취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배경으로 하여 그들의 세대에 선포하였다. 묵시자들은 그들의 입장을 어떤 점에서는 먼 과거의 역사에서 취하였으며, 그 역사가 마치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는 자신들의 세대에 주어진 예언인 것처럼 그것을 재기록하였다. 어떤 경우들에서는 묵시들이, 단정적인 예언에서 반영되는 최근의 사건들에 의해 연대가 정해질 수 있다.


V. 종교적인 특징

'묵시적'이란 말은 묵시들에서 발견되는 종말론을 묘사하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1. 이원론
묵시적인 종말론은 고난받는 현재의 특징과 구원이 있을 미래간의 대조를 보는데 이러한 대조는 너무나 두드러진 것이어서 그것이 결국 두 세대, 곧 "이 세대와 오는 세대"란 말로 묘사된다. 이 세대는 악에 의해 특징지워지지만 오는 세대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것이다. 이 세대로부터 오는 세대에로의 변천은 오직 하나님의 초자연적이거나 우주론적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현세적이다. 두 세대에 대한 이러한 용어가 신약에도 나오지만 이것이 묵시 문학에 있어 오직 에스라4서와 바룩의 계시에만 완전히 발전된 형식으로 나온다.

많은 비평가들이 이러한 발전을 페르시아의 이원론영향에 돌리지만 그러나 이것은 또한, 이미 구약의 예언자들에서 잠재하는 개념들의 역사적 발전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미래의 나라에 대한 예언적인 기대는 구속받은 땅을 포함한다(사 32:15-18;11:6-9;65:17;66:22). 이러한 변화는 오직 하나님의 임하심에 의해서만 성취될 것이며 이때 그는 현재의 질서를 심판으로 진동시키시고(사 13:13;34:4;51:6; 학2:7) 옛질서로부터 새로운 질서를 나오게 하실 것이다.

묵시록 이원론은 세상과 구속에 대한 이러한 근본적인 예언적 견해가 발전한 것이다. 새로운 질서는 보통 새로운 땅에 대한 이사야 예언의 특징들로 묘사된다(에녹서 45:4 이하;51:1-5). 모세의 승천 10:1은 "하나님의 모든 창조에서" 그의 나라에 대한 명시를 기대한다. 때로는 보다 모호한 말들이 사용된다.(에녹서 62:16)

구약의 어떤 절들은 새로운 질서를 현재의 질서에 매우 유사한 말로 묘사하는 데 비하여 다른 절들(사 65,66장)은 새 하늘과 새땅을 포함하여 전적인 변화를 말한다.

어떤 묵시들은 이러한 두 기대를 병행시키며, 새로운 질서의 영원한 나라가 수반하는, 이 세대에서 일시적인 나라를 예감한다(스4서 7:28,29). 바룩서에서 오는 세상은 새 땅으로 묘사된다(32:6). 에스라 4서의 말은 해석하기가 어렵다.(7:36,113)

2. 역사적인 전망
선지자들은 특별한 역사적인 상황에서 그들의 입장을 취하며 그들의 상황에 따라 메시지를 전한다. 그들은 멀리 하나님의 나라를 내다보고 있었으며 그들에게 있어서의 미래는 현재와 부단한 긴장 상태에 있었다.

이사야 13장은 마치 바벧론에 대한 심판과 종말론적인 재난이 같은 것이요 같은 날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바벧론에 대한 심판을 종말론적인 재난을 배경으로 하여 묘사한다.

예언서들에서 역사적인 심판들은 실현된 종말론으로 제시된다. 묵시자들은 역사와 종말론간의 이러한 긴장을 상실하고 있다. 그들은 현재를 미래를 배경으로 하여 보지 않지만, 그들의 견해는 역사를 신학적으로 해석할 목적으로 전(全)역사를 망라한다. 묵시들은 사실 역사적인 문서들이라기보다는 신학적인 논문들이다.

3. 비관론
묵시자들을 비관론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옳지 않은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하나님이 결국 승리하여 그의 나라를 임하게 하리라는 확신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현세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의인들의 고난에 대한 문제는 하나님께서 현재에 그의 백성으로부터 그의 도우심을 철회하셨고 구원은 오는 세상에서만 기대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에녹서 89:56-75). 에스라4서는 현세를 가망없는 악한 곳으로 보고 그 해결은 전적으로 미래에 있는 것으로 본다(4:26-32;7:50;8:1-3). 의인들은 고난을 오직 미래의 구원을 기다리는 중에 인내를 갖고 받을 수 있을 뿐이다.

4. 결정론
이 악한 세상의 진로는 결정되어 있으며 이 세상은 그 진로에 따라 진행되어갈 수 밖에 없다. 비록 의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만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종말에 앞서 정하여진 기간이 경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곧 그 나라는 정하여진 때를 기다려야만 한다. 하나님 자신은 의인들에게 도움을 베풀기보다는 그가 정하신 때가 지나가기를 기다리시는 분으로 묘사된다(에스라4서 4:36,37). 이러한 사상은 종종, 때의 경과를 정하여진 수주나 수년의 기간으로 나누기에 이르렀다.

5. 윤리적인 무저항
묵시자들은 도의적인 혹은 복음주의적인 역설이 결여되어 있다. 그들의 문제는 바로, 부당한 재난으로 억압받는 의로운 남은 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있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인들에게 불신앙에 대한 보응을 부단히 경고한다. 이에 반하여 묵시자들은 정점을 요하지 않는 신실한 자들을 위로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묵시록에는 윤리적인 권고가 거의 없다. 주목할 만한 윤리적인 권고를 내포하고 있는 12족장의 언약과 에녹서(92-105) 같은 책들은 성격에 있어 거의 비묵시적이다.


VI. 신약의 계시

요한계시록은 많은 점들에서 유대인 묵시록들과 같지만 중요한 점들에서는 후자의 것들과 다르다. 비록 보통 이 양자간의 유사점들이 강조되고 있긴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 차이점들을 강조하기로 한다.

첫째,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그의 책을 예언이라 부른다(1:3;22:7,10,18,19).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묵시록들은 자아 의식이 없다. 사실 그것들은 예언의 부재로 인하여 야기된 공허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직접 인간을 통하여 말씀하셨을 때 예언 운동의 부활을 증언하였다.

다른 신약서들처럼 묵시록들은 예언정신의 부활의 산물이다. 요한에게 주어진 계시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수단이다.(1:2)

둘째, 요한은 그의 책을 익명으로 하지 않는다. 그는 다음과 같이 자기의 이름을 밝힌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1:4). 그는 자기 책의 권위를 위해 어떤 옛 성인에게 호소하지 않으며 자기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의 권위로써 기록한다.

세째, 요한은 미래에 대한 묵시록에서와 같은 취급과는 다르게 기록한다. 묵시록은 예언 형식으로 역사를 추적해 간다. 이에 비하여 요한은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 상황에서 자기 입장을 취하고 자기의 동시대인들에게 말을 하며 종말론적인 절정을 묘사하기 위해 미래를 예언적으로 설명한다.

네째, 요한은 역사와 종말론간의 예언적인 긴장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은 로마인 동시에, 전적으로 역사적인 로마와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없는 종말론적 적그리스도이다. 아시아의 교회들은 박해를 당하고 있었지만 A.D.1세기에는 묵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은 박해는 없었다.

요한계시록에는 역사적인 로마에 의한 환난은 종말론적인 적그리스도에 의한 보다 격심한 환난에 비하여 너무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그 양자 사이를 식별하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여기서 역사는 종말론적으로 해석되어진다. 로마에 의한 환난은 실현된 종말론이다.

다섯째, 요한은 묵시록 사상의 비관론보다는 복음의 낙관론을 내포하고 있다. 요한은 이 세상의 사단에 의한 환난이 시대 종말에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격력하게 닥쳐 오리라고 예언하면서도 그는 이 세상을 환난에 저버려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이 세상은 하나님의 구속의 현장이 된다.

오직 죽임을 당한 어린 양만이 그 책을 열수 있고 역사를 종말론적인 결말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계시적으로 성취될 구속은 골고다의 사건에 근거되어 있다.

첫째인(6:2)은 전쟁, 기근, 죽음과 순교의 현장이기도 한 세상에서의 복음의 승리적 선교를 나타내는 것 같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나 그의 백성을 저버리지 않으신다. 성도들은 바로 순교에서 짐승을 정복하고 모든 세대의 왕이신 분을 찬양한다.(15:2,3)

마지막으로, 계시록은 예언적인 도의적 역설을 하고 있다. 그것은 실로 미래의 구원을 약속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곱 편지는 경고의 음성을 발하며 회개를 요구한다(2:5,16,21,22:3,19). 하나님께서 진조를 발하시는 것은 징벌일 뿐 아니라, 그 의도가 사람들로 하여금 너무 늦기 전에 회개하도록 하려는 자비로운 계획을 실현하는 것이다(9:20;16:9,11). 요한계시록은 복음적인 초대로써 그 끝을 맺는다(22:17). 따라서 그것은 전체적으로 중대한 도의적인 취지를 갖고 있다. 곧 심판이 해이해져 졸고 있는 교회에 임할 것이지만 악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문은 열려 있다. 요컨대 계시에는 예언적인 것과 비예언적인 것이 있는데 신약의 계시는 전자의 유형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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