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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12제자

by 소소한행복^^ 202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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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드로라 하는 시몬

먼저 히브리어로 '듣다'는 뜻인 '시몬'(Simon)은 '시므온'(Simeon)의 단축형 명칭으로서(창 29:33) 베드로의 본명(本名)이다.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 하고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창 29:33)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는 요나의 아들들이자 어부 출신들로서(마 4:18-20) 갈릴리 벳새다의 토박이였다(요 1:44). 또한 그들은 예수의 제자가 되기 전에 이미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것 같다(요 1:35-42). 한편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아람어로 '게바'(Cephas)라는 새이름을 지어주셨는데(16:18; 요 1:42; 갈 1:18), 이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가 된다(요 1:44). '반석'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주신 것은 주님의 역사적 예견의 방법에 의해서 주어진 이름이다(10:2;16:18;막 3:16;눅 6:14). 이에 대한 아람어 동의어인 게바(반석)가 당시에 이미 널리 사용되던 이름이지만(Best, Wilson) 예수께서 시몬에게 붙여 주심으로 그의 신분과 미래의 가능성을 통찰하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발견케 한다. 향후(向後) '베드로'라는 이름은 사도로서의 공적 지위를 암시하는 이름으로 대부분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가 제자 명단에서 늘 첫째를 차지한 것은 (1) 다른 제자들에 우선한 그의 신앙 고백(16:16), (2) 예수의 예언적 인준, (3)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한 교회 창설의 주역(행 2:14), (4) 이방인에 대한 최초 선교자(행 10장) 등의 이유로 인해서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예수께로부터 부여받은 권위와 사명의 대표성이나 우선성을 말한 것이지, 그의 인격이나 지위의 선천적 탁월성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여하튼 베드로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 중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신실히 감당하게 된다(행 2:15 ff; 고전 15:5). 그러나 이것이 로마 카톨릭에서 주장하는 베드로의 수장적(首長的) 권위나 법왕권을 뒷받침해 주지는 못한다(갈 2:11; 벧전 5:1). 실로 충동적이고 감정적이었던 베드로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신실한 예수의 증인으로 변화되어 초대 교회의 기둥같은 존재로 활약했다. 한편 성경에서는 예루살렘 공의회(행 15장)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해 침묵하고 있으나 전설에 의하면 바벨론까지 선교 활동을 하다가 말년에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어달려 순교했다고 전한다.


2. 안드레

이 이름은 순수한 헬라이름으로서 '용감한 자', '남자다움'을 뜻한다. '안드레'는 베드로의 형제요 어부 출신으로서 성경에는 그렇게 두각(頭角)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막 13:3; 요 1:35-44; 6:8; 12:22). 특히 그의 활동중 두드러진 것은 그가 베드로를 예수께 인도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원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으나(요 1:40) 예수께서 메시야이신 것을 확신하고 자기 형제인 베드로를 그리스도께 인도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최초의 선교사란 칭호를 받았다. 또한 그는 이웃을 돕는데 신속하게(요 6:8, 9;12:21, 22) 그리고 은밀하게 선(善)을 행하는 숨은 일꾼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스구디아, 헬라, 소아시아 등지에서 선교하다가 A.D. 70년경 파트라에서 X자형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다고 한다.


3. 야고보

이스라엘의 조상의 이름과 같은 '발꿈치를 잡았다'란 뜻이다(창 25:26). 야고보와 그의 동생(17:1;막 3:17)은 세베대와 살로메의 아들들로서 예수와 사촌 형제간(요 19:25)이 된다. 그는 요한과 함께 예수께서 가장 신뢰하던 제자중 한 사람이다(17:1;막 5:37;9:2;13:3;눅 8:51;9:28). 후에 그는 해롯 아그립바에 의해 피살되어 사도 중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행 12:2).


4. 요한

이 헬라명은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또는 '여호와께서는 자비로우시다'라는 뜻이다. 그는 예수의 최초의 제자가 되었고(요 1:35-37),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으며(눅 22:8;요 13:23;19:26, 27), 장수하면서 성경의 마지막 계시를 기록한 자(계 1:1)이다. 또한 그의 성격은 내성적(요 20:1-10)이면서도 과격한 성격을 가져(눅 9:49,54) 주님으로부터 '우뢰의 아들'이란 뜻의 '보아너게'란 별명(막 3:17)을 얻기도 하였다. 그는 주님의 사랑을 흠뻑 받은 만큼 남자 제자로서는 유일하게 주님의 십자가 최후를 지켜보았으며(요 19:26), 전설에 의하면 그는 예수의 당부에 따라 마리아를 예루살렘에 있던 자기 집에 모셔다가 그녀가 죽을 때까지 11년 동안 극진히 봉양했다 한다(Irenaeus, Polycrates, Clement).

대부분의 기록에서 요한 보다 야고보가 항상 먼저 언급된 것으로 보아 야고보가 요한의 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사도들 중 최초로 순교함으로써(행 12:2, A.D. 44년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참수당함) 그의 형제 요한 만큼의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 두 사람은 어부 출신이자 세베대의 아들들이었는데, 세베대는 삯꾼을 둘만큼 부자였으며(막 1:20), 그 아내는 예수의 사역을 보조해 주기도 했다(27:55, 56; 눅 8:3). 그런제 12제자 중 오직 요한만이 예수의 십자가 곁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이나, 또한 그의 가족이 대제사장 집안과 어떤 연계가 있었던 것은(요 18:15, 16) 아마도 세베대의 집안이 부유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한편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어머니의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이어받은 듯한데 그들이 예수께로부터 받은 '우뢰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은(막 3:17; 9:38-41; 눅 9:54-56) 그 별명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그들의 불같은 기질(氣質)을 반영해 준다. 여하튼 요한은 베드로와 각별한 우애를 다진 가운데 초대 교회의 한 모퉁이 돌로서의 사역을 감당했으며(눅 22:8; 요 18:15; 20:2-8; 행 3:1-4; 8:14; 갈 2:9), A.D.70년 예fn살렘 멸망 후에도 에베소에 정착하여 선교, 교육에 전념했다고 전한다. 한편 그는 A.D. 95년경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대박해때 밧모섬에 유배되었다가 그 다음해 넬바 황제때 에베소에 돌아와 지속적인 복음 사역을 감당하다가 트라얀 황제 때에 영면(永眠)함으로써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하여 폴리캅(Polycarp), 파피아스(Papias), 익나티우스(Ignatius)등과 같은 걸출한 지도자들을 배출하는 등 초대 교회의 인재 양성에 남다른 공헌을 했다고 한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모두 예수께 각별히 인정받던 3대 제자에 속하였다. 그들은 모두 가버나움 출신의 어부들이다. 한편, 가버나움은 신약에만 나오는 곳으로서 '나훔의 동리'라는 뜻이나 구약의 선지자 나훔과 관련이 있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이 성읍의 소재(所在)에 대해서 전에는 '칸 민예'(Khan Minyeh)라고 생각되어 왔으나(Stanley, Carr) 1931년의 유적 발굴 결과 아랍인이 지은 우마야드(Umayyad) 궁전의 폐허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가버나움은 칸 민예에서 4km 정도 북동쪽에 위치한 '텔 훔'(Tell Hum)으로 인정되고 있다(Thomson, Robinson). 이곳은 갈릴리 바다의 북서 해안에 위치하여 어업이 번창하였고, 동서 상업로의 요충지였다. 때문에 이곳에 세관이 있었고(막 2:14) 로마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마 8:5-8). 또한 가버나움은 예수의 제자 중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의 고향이었고(8:14;막 1:29),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도 이곳이 고향인 듯하다.

한편,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는 '여호와의 주심'이란 뜻의 '세베대'라는 이름을 가졌고, 예수의 이모인 살로메의 남편(27:56;막 15:40;16:1)이다. 그의 집에서는 삯꾼을 부리고 있었으며(막 1:19,20), 예루살렘에도 그의 가옥을 가지고 있었던(요 19:27) 점으로 보아 사회적으로 상당히 유력한 가문출신인 것 같다. 따라서 그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신교 활동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더욱이 그는 아들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음으로 주의 사역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5. 빌립(필리포스)

순수한 헬라명으로 그 뜻은 '말(馬)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도 역시 세례 요한을 떠나 예수를 따랐으며(요 6:5-7; 12:21, 22; 14:8-14) 베드로와 같은 고향인 벱새다 출신이다(요 1:44). 그는 주로 헬라 사람들을 예수께 인도한(요 12:20-22) 것으로 보아 적어도 헬라의 언어와 문화에 일가견(一家見)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의 이름은 다른 복음에서와 마찬가지로 12제자 명단 중 제 2그룹의 첫번째에 언급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렇게 두드러진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편 A.D. 2세기 감독인 폴리크라테스(Polycrates)는 빌립이 아시아의 로마 식민지에서 사역하다가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6. 바돌로매

히브리 이름으로 '돌로매의 아들'이란 뜻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이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인 '나다나엘'과 동일시 되고 있다(Carr, Ewald, Meyer). (1) 나다나엘은 12제자와 관련 있는 인물로 나타난다(요 1:43-51; 21:2). (2)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께로 데려왔다(요 1:43-46). (3) 사도들의 명단들에서 빌립과 바돌로매가 항상 연결되고 있다. 비록 이러한 증거가 확실한 것이 아닐지라도 만일 바돌로매가 곧 나다나엘이라 한다면 그는 적어도 가나 출신이며(요 21:2), 예수께 칭찬받은 자임을 알 수 있다(요 1:47). 한편 전설에 의하면 그는 애굽, 인도, 알마니아 등지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다가 순교하였다고 전한다.


7. 도마

도마는 '디두모'(Didymus, 요 11:16; 21:2)라고 불리우는데 디두모는 아람어로서 '쌍동이'(Twins)를 의미한다. 실로 그는 회의론적 신앙인의 대명사로 통할만큼 의심이 많았지만, 그와 더불어 용기있고(요 11:16), 바른 신앙 고백자로도(요 20:28) 널리 알려졌다. 어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인도와 파르티아에 선교사로 가서 그곳에서 교회를 세우고('성 도마 교회'가 인도에 현존) 그곳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한다.


8. 세리 마태(맡다이오스 호 텔로네스)

그의 본명은 알패오의 아들 레위였다. 마태라는 이름은 '신실한 자'란 뜻의 히브리어 '에메트' 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란 의미를 가진 히브리식 이름 '맛다냐'(대상 9:15)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또 박박갈과 헤레스와 갈랄과 맛다냐니 저는 미가의 아들이요 시그리의 손자요 아삽의 증손이며..."(대상 9:15)

그리고 마가와 누가는 세리 마태를 '레위'란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유대인들의 경우에서 흔히 볼 수 있다시피 동시에 두 서너개의 이름을 가졌던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마가와 누가는 12제자의 명단에는 그를 '마태'란 이름으로 기록하였다. 아마도 레위 소명받기 전의 이름이고 마태는 소명후에 부여된 호칭인 듯하다. 이는 마치 사도 바울이 두개의 이름('사울')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도의 권위로서 자칭할 경우에는 소명 이후의 호칭인 '바울'이란 이름을 사용한 것과 비교할만하다. 한편 마가와 누가는 '레위'와 '마태'란 이름을 둘 다 사용한 반면 마태 자신은 '마태'란 이름만 사용하고 있다. 한편 이 마태는 12제자들중 한 사람이요 본서의 기록자이기도 하다.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마 9:9)
당시 세관은 그 당시 유대를 속국(屬國)으로 하고 있던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곳이었고 거기에다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정치 자금의 출처이기도 했다. 한편 이곳 가버나움은 상업과 교통이 발달했었던 다메섹과 갈릴리의 해안 도시들과 연결되는 길목에 위치했다. 따라서 육상 및 해상으로 운반되는 상품들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기에 적합했던 곳이다. 더욱이 이곳은 수리아와 애굽을 잇는 무역품에 대한 세금을 징수하기에 적절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세관은 대로로 통행하는 상인들에게 관세를 부과키 위해 길가나 마을 입구에 간이 건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곳 관리들은 밤낮없이 세관 업무에 종사했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상품에 대해 세금을 부과했다. 그리고 그들은 예리하고 긴 막대로 곡식 자루 등을 찔러보아 그 속에 불법 상품들이 있는지의 여부를 알아보기도 할 정도로 철저했다고 한다(Van Lennep). 실로 그들은 세금의 강제, 부당 징수등으로 유대 사회 내에서 가장 악질적 인물 중의 하나로 평가되기도 했다(5:46; Edersheim).

공관복음에 나오는 세리들은 로마 정부의 직접적 임명을 받은 조세징수(租稅徵收) 청부 계약의 주계약자가 아니다(라틴어로는 Publicani). 그들은 통상적으로 외국인이었고 '세리'들이란 단지 그 밑에서 일하며 한지방을 맡아서 징수하는 본토(本土) 출신 사람(라틴어로는 Portitores)들이었다. 사실 이들은 멸시받는 존재였다. 그 이유는 조세 청부 제도가 대규모의 부정 부패(不正腐敗)를 낳게 할 뿐 아니라 엄격한 유대인의 눈에는 세리들이 그들을 지배하는 외세를 위하여 세금을 징수함으로써 매국적인 행위를 하기 때문이었다. 그 뿐 아니라 세리들은 이방인들과 접촉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더럽혀져서 부정하게 되었을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9.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야코보스 호 알파이우)

그는 '작은 야고보'로 불리어지는 자로서(막 15:40)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된다. 한편 '작은 야고보'라는 별명에 대해 학자들간에는 '몸이 왜소한 야고보', '동생 야고보'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물론 그에 대한 정보는 거의 희박하다. 그러나 그가 만일 27:56; 막 16:1; 눅 24:10에 등장하는 인물과 동일인이라고 본다면 적어도 그의 어머니는 예수의 어머니와 요한의 어머니인 살로메와 자매지간인 '마리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마리아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때 다른 여인들과 그곳에 가까이 가 슬퍼했던 여인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야고보의 아버지 알패오는 요 19:25에 언급된 글로바와 동일 인물로 보고, 그가 곧 예수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과 친족이라 보기도 한다(Eusebius).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은 명확히 확증지을 수는 없는 내용들이다.


10. 다대오(닫다이오스)

베자 사본에 따르면 '다대오'란 이름대신 '여자의 마음'이란 뜻인 '렙바이오스'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초기 대표적인 사본들(알렉산드리아, 가이사랴, Western)에는 본문과 같이 '다대오'로 표기되어 있다. 한편 본서와 마가의 명단에 언급된 '다대오'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명단과 비교했을 때 그곳에 나온 '야고보의 형제(아들) 유다' (유다스 야코부)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에는 '형제(아들)'라는 말이 없어 설왕 설래하고 있다. 그런데 유다서의 저자 자신이 곧 야고보의 형제 유다라고 진술하고 있는데(유 1:1), 만약 유다서 저자인 유다가 사도인 '야고보의 유다'와 동일 인물이라면 이는 곧 '야고보의 형제 유다'가 된다. 반면에 혹 유다서의 저자인 유다가 예수의 이복 형제이며 동시에 예수의 이복 형제인 야고보의 친 형제라면 '야고보의 유다'는 곧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된다. 한편 '다대오'는 '사랑스런 자'(the beloved)를 의미하는 어근(語根)으로부터 유래하였다. 따라서 다대오는 '사랑스런 자 유다' 즉 '유다 다대오'로 불리어졌을 것이며, 결국 이 명칭은 '가룟이 아닌 유다'(요 14:22)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일대기를 기술한 외경 '다대오전'에는 그가 시리아, 알마니아 등지에서 활발한 선교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11. 가나안인 시몬(시몬 호 카나나이오스)

'가나안인'은 아람어로서 헬라식 표기로는 '젤로테스'인데, 이 둘은 모두 '열심가, 열심당원'이라는 의미이다(눅 6:15; 행 1:13). 이로 보건대 그는 제자로 부름받기 전 유대 민족의 전통과 종교를 강력히 지지하던 국수주의적(國粹主義的)인 정치 단체인 셀롯당(열심당)의 일원이었음이 확실하다. 한편 셀롯당은 가다라 출신 유다가 A.D. 6년 구레뇨 총독의 국세 조사에 저항하기 위해 조직한 과격한 집단으로서, 예루살렘 패망의 불씨를 당긴 유대 전쟁(Jewish War)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예수 당시에는 그 활동이 대단치는 않았던 것 같다.


12. 가룟 유다(유다스 호 이스카리오테스)

이 가룟 유다의 아비는 '가룟 시몬'(Simon Iscariot)이다(요 6:71; 13:26). 한편 '가룟'이라는 이름에 대해 여러 학설이 소개되고 있다. (1) '케리옷 출신 사람'(man of Kerioth)이라고 보고, 남쪽 유다의 한 지역인 가룟이라는 동네에서 그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2) 가룟은 열심당원들의 운동(movement)과 유사한 운동을 의미하는데 사용된 라틴어인 '시카리우스'(sicarius)의 음역이라는 설명이 있다. (3) 가룟은 '여리고의 사람'(man of Jericho)을 뜻한다는 설이 있는데, 이러한 설명은 헬라어와 와전(訛傳)을 근거로 한 설명이다. (4) 가룟은 '거짓'(falsehood). '배신'(betrayal)을 뜻하는 아람어의 음역이라는 설이 있다(C.C. Torrey). (5) '가룟 유다'는 그의 직업을 말해주는 '염색공 유다'(Judas of the dyer)라는 견해가 있다(A. Ehrman), (6) 다섯번째 견해를 약간 수정하여 '머리가 빨간 유다'(Judas the redhead)를 가리킨다고 설명한다(Albright). 이중 두번째 견해가 일반적이기는 하나 첫번째와 여섯번째 견해도 주의를 귀기울일만하다. 여하튼 이 유다는 12제자 중 회계를 맡고 있었으나 지나친 물욕(物慾)으로 인해 정직하지 못하였고(요 12:6; 13:29), 그 결과 그는 스승인 예수를 완악한 대제사장들의 손에 넘겨 주는 배신자가 되고 말았다.

가롯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아'라는 제자를 사도로 세운다.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행 1:25-26)

맛디아는 '맡다디아스'의 약칭으로 `여호와의 선물' 이란 뜻이다. 유세비우스(Eusebius)의 추측에 의하면 그는 눅 10:1에 나오는 70인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Ecclesiastical History).

한편, 구약의 이스라엘은 12지파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전형적 모델이다. 이는 예수께서 12제자를 선택하여 천국 일꾼으로 사용하신 것과도 연관이 있다. 유다에게서 나신 그리스도가 구약의 언약 공동체인 12지파 전체의 진정한 통치자이신 메시야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축복은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로 모으시는 영적 이스라엘(야곱)의 모든 자손들이 공유(共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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