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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비평

by 소소한행복^^ 2023.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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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비평이란 구약성경을 학적으로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하등 비평'과 '고등비평'이란 두 범주로 구분된다. 하등 비평이란 구약성경의 본문과 그 전승 방법 및 조건을 다루는 것이다. 그리고 고등비평이란 성경 각 권의 연대, 저작권, 위치, 구성 여건 및 목적과 성격을 다루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소위 '고등 비평'이란 구약성경의 절대적인 신뢰성을 부인하고, 이상의 문제들에 있어서 성경의 분명한 언급과 상충되는 의견들을 서슴없이 주장하는 성경 연구 방법을 가리킨다.
    
기독교 초기의 수세기 동안에, 이단적인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적대적으로 비평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특히 마르시온(Marcion), 켈수스(Celsus), 폴피리(Porphyry) 등과 같은 영지주의자(靈知主義者)들에게서 이루어졌었다. 이들은 기독교를 대적한  자들이었으며, 이교도의 철학적 관점에서 구약성경을 대적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일부 유대인들도 구약성경의 어떤 말씀을 대적하고, 이사야서의 뒷부분을 이사야의 글이 아니라고 주장했었다.
    
스피노자(Spinoza, 1632-1677)는 '고등 비평의 시조'라고 일컬어진다. 그는 오경(五經)의 모세 저작권을 부인하고, 이것이 에스라의 작품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독일 학자 비터(H.B.Witter,1711)는 창조의 기사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의해서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쟝 아스트럭(Jean Astruc, 1753)은 하나님의 이름에 따라 창세기 전체를 분류하고서, 창세기에는 열두 가지의 기본 문서들이 내제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문서 분석의 원리는 아이히혼(Eichhorn, 1780-1783)에게 채택되었다. 물론 아이히혼은 아스트럭과는 달리 모세가 창세기의 편집자라는 것을 부인했었다. 아이히혼의 창세기의 모든 문서들을 J(Jehovah의 첫글자) 문서와 E(Elohim의 첫글자) 문서로 구분했다. 이러한 부정적 비평('부정적'이란 말은 이러한 비평들이 성경의 분명한 언급을 정면으로 부정하기 때문임)은 K.D,Ilgen에 의해서 더욱 발전되었다. 그는 E 문서는 E1과 E2 J.D(Deuteronomy의 첫글자)문서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되었다. 이러한 문서들의 배열은 '초기 문서설'이라고 일컬어진다.
    
19세기에는 다른 견해들이 주장되었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위 '보충설'이라는 것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원래는 하나의 기본적인 문서가 있었는데, 거기에 다른 문서들이 보충적으로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문서설에 있어서 중요한 발전은 헤르만 후펄트(Herman Hupfeld, 1853)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는 Ilgen보다도 더 분명하게 E1과 E2를 구분했다. 그리하여 그는 E(혹은 P), E2,J,D 문서들로 구분하였다. 여기서 P(priestly, 제사 문서)는 이들 중  최초의 것이고, D(신명기 문서)는 가장 후대의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주로 그라프(K.H.Graf,1866)의 영향으로 인하여, P문서는 가장 후대의 것이고, J문서가 가장 최초의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J,E,D,P문서의 순으로 주장되었다. 이러한 문서들의 순서는 벧하우젠(Julius Wellhausen,1876)의 '종교 진화론'(이스라엘 종교 제도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진화론적 이론)과 관련되어  있다. 이 종교진화론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종교는 특별 계시에 의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자연적 종교 심리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했다. 족장들은 실제 역사적인 인물들이 아니고, 창세기에는 족장 시대의 정확한 모습이 반영되어 있지도 않다고 했다. 그리고 특정한 성소에서 예배드린 것은 요시아의 주도하에 신명기적 종교개혁이 일어난 B.C.622년 이후의 일이라고 했다. 또한 레위기적 제사 제도는 이보다도 더 이후에 속한 것들이라고 했다.
    
이스라엘 종교의 진화론을 옹호하는 자들은 다윗의 이름으로 기록된 시편의 다윗 저작권을 부인하고, 이사야서의 통일성과 이사야 저작권도 부인하며, 다니엘서의 다니엘 저작권도 부인했다. 이러한 종교 진화론은 20세기 초반에도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종교 진화론이 대부분 인정되지 않고 있으며, 단지 문서설은 성경의 진리성을 부인하려는 자들에 의해서 주장되고 있을 따름이다. 이처럼 종교  진화론 이 폐용지물이 된 이유는 주로 고고학적인 발견물들의 발굴과, 인간의 진화설을 철저히 분쇄해 버린 1,2차 세계 대전 때문이었다. 요컨대, 종교 지화론 자체에 내재된 오류 때문에 종교 진화론도 패기되었던 것이다.
    
궁켈(Hermann Gunkel)rhk rmfptmaks(Hugo Gressmann)의 영항 하에 구약성경의 자료들과 시와 신학과 역사적 이야기가 어떻게 성경에 기록되었는가를 연구하는 학파가 생겨났다. 이것을 위해서 구약성경의 모든 내용들은 분류되어지고, 그 종류별로  구분되어졌다. 그리하여 Martin Noth(1943)에 의하면 구약의 처음 네 책(창, 출, 레,  민)은 고대로부터 전래되어 온 전승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Noth의  입장은  실제로 궁켈과 그레스만의 작품들에 근거한 것이다. 또한 NOth의 견해는 스칸디나비안 학파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 학파의 주도자인 Ivan Engnell은 구약성경이란 그 대부분이 구전(口傳)으로 전래되어 오다가, 바벧론 포로기에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Engnell은 구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문서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쏘라 본문을 낮게 평가하고, 칠십인역(LXX)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해두루마리들(the Dead Sea Scrolls)이 발견됨으로 말미암아 마쏘라 본문의 가치가 훨씬 부상되었다. 한때는 학자들간에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본문을 제멋대로 수정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는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본문을 신중하게 다루는 것이 지배적인 현상이다.
    
지금까지 보아 온 비평적인 운동과 더불어, 성경을 권위있고 무오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건한 학파가 있었다. 이러한 경건한 학자들은 가치있는 주석들을 이미 출간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적인 저서들을 계속 출판해내고 있다. 이러한 학자들도 구약성경을 학적이고 비판적으로 연구하기는 하지만, 성경의 권위에 의해서 그것을 수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구약성경 연구의 거장들은 헹스켄바르크(E.W.Hengstenberg), 카일(K.F.Keil), 윌리엄 헨리 그린(William Henry  Green) 등이 있다.
    
물론 구약성경 연구의 미래가 어떠한 방향으로 진전될 것인지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고고학적인 발견들로 인하여, 학자들은 대부분 보수적인 견해를 갖게 되었음에 틀림없다. 물론 이것은 아주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좀더 보수적인 견해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즉 구약 학자들은 중생한 사람이어야 하고, 학적인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구약 성경의 장래가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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