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민주적인 정부 형태가 존재하는가 하면, 새로운 전체주의적 세력들이 발흥하고 있고, 최근에는 세계 정부의 구상을 실현키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성경적인 국가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인간의 창조에 있어서 통치란 영적인 것이었다. 즉 에덴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통치되었다. 성경 신학에 따르면 국가란 인간들을 보존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의 질서로서 이를 통해서 타락한 인간의 객관적인 조직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국가란 사회 정의를 구현시키고 타락한 인간들이 사회적 혼동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권세인 것이다(롬13:1). 따라서 정부란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모든 권세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바대로 하나님께 대해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요19:20,21;마28:18;골1:16). 즉 국가는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벌할 책임이 있는 것 이다.
중세 시대 사람들은 국가의 존재 근거를 교회에 두었다. 따라서 그들은 사악하고 죄 많은 로마 제국도 신성한 존재로 규정해 버렸다. 그러나 종교 개혁가들은 신약성경에 근거하여 국가와 교회는 별개의 존재로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이러한 국가와 교회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교리는 미합중국을 창건한 사람들에 의해서 완전한 실현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에 파시즘과 나치주의와 공산주의가 출현하여 르네상스 사상에 따라 국가의 자율성을 다시 주장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국가는 하나님께 받은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해 버렸던 것이다.
성경에 국가란 범죄를 제지하고 사회의 공의를 증진케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로 규정된 반면에 또한 그것은 곧잘 죄악에 빠져서 심지어는 악마적인 존재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처럼 국가는 신정 정치의 극단(롬13장)에서부터 짐승의 나라(계13장)에 이르기까지 유동적인 존재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나라들(민족들)을 심판하 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것은 국가들이 제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그 차이점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정부들은 잘못된 법을 제정하거나 합법적인 자유를 억압하기 쉽다는것이다.
성경에는 국가와 시민은 모두 다 하나님의 관할하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양자(兩者)는 모두 빼앗길 수 없는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신자들은 국가에 복종해야 하는데, 체념적으로만이 아니라 양심적으로 그것을 지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구약성경에는 왕이 국민의 사유재산을 탈취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왕상 21장). 또한 사도들은 복음 전파를 훼방하는 지도자들에게 저항했다.(행4:19;5:29)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은 주장하기를 국가의 존재와 권위란 그것이 마귀의 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승리에 참여했다는 근거 위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쿨만의 견해에 따르면 국가란 기독론적인 구속사 안에서만 그 합법적인 근거와 권력을 갖는 것이고 하나님의 보존적인 질서라는 의미는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이 이론에 의하면 국가는 그리스도의 부활 이전에는 오직 비(非) 영적인 역할만을 담당하는 존재로 간주되는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눅20:25)고 말씀하신 것은 국가가 단지 예수님의 구속적인 승리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렇게 명령하신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복종하신 것은 빌라도의 정권이 그리스도의 승리라는 관점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분명히 국가에 대한 기독론적인 기초는, '로고스'란 창조와 보존(섭리)의 주관자시라는 의미로 발견되어져야 한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국가란 반드시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정복(승리)이라는 측면에서만 정당화되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요컨대, 시민(신자포함)은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는 바울의 유명한 성경 구절은 당시 로마 제국의 심장부에서 신자들에게 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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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국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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