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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

by 소소한행복^^ 2023.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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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히브리어로는 촘(צוּם), 헬라어로는 네스티오(νηστεύω)이란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 일반적으로는 일부러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는 금식에 대한 예가 많이 나와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법궤를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되찾았을 때에 금식했었다(삼상7:6). 요엘은 그 백성들에게 금식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선포하였다(욜2:12). 고넬료는 금식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베드로를 청하하라는 말씀을 들었다(행10:30). 이 때 베드로도 아마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던 것 같다(행10:10). 바울과 바나바도 금식하고 있을 때에,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나도록 보내심을 받았었다(행13:3).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자주 금식한다고 말했으며(고후6:5;11:27), 정상적인 부부생활에 있어서도 얼마 동안 절제하며, 기도하고, 금식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고전7:5). 예수님 자신도 금식하셨다(마4;2).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금식하도록 말씀하지는 않으셨지만, 자신이 승천한 후에는 제자들이 금식해야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막2:20)

적절한 금식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금식의 목적은 특별히 겸비하게 회개하는 것이다(왕상21:27;시35:13). 그러나 금식은 또한 기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마17:21;행13:3), 이러한 금식기도는 특별히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이나 하나님께 무슨 응답을 구할 때에 행하는 것이다(행10:30 참조). 그리고 하나님의 특정한 소명을 수행하려고 할 때에도 금식했었다(스 8;23;행13:3). 이러한 사실은 바로 주님의 경우에서 가장 뛰어나게 예증되었다. 즉, 주님은 광야에서 사십일간 금식하신 직후에 세례를 받으셨다(마4;2; 그리고 바울이 아라비아 광야에 갔던 일도 참조하라). 이러한 맥락 속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금식이란 또한 시험의 기간이며, 따라서 앞으로의 사역을 위해서 더 큰 능력과 굳건한 믿음을 얻기 위한 시련 기간이란 사실이다.(마4;1,3이하)
    
성경을 통해서 볼 때, 종교적인 관습으로서 금식하는 것은 위험한 일임에 틀림없다. 금식이 하나님께 어떤 것들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사58:3). 금식이란 잘못된 생활을 개선하는 참된 회개로서 대치될 수도 있다(사58:5이하). 그러나 또한 금식이란, 단순하게 하나의 관습으로서 그 제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다(슥7:5).

사 58:6-9/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슥 7: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이처럼 금식은 어떤 경우엔 신앙을 과시해 보이는 것이 될 수도 있으며(마6:16), 따라서 자기의 의(義)를 나타내 보인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것은 참된 회개와 정반대가 되며,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과도 정반대가 된다(눅18:12).
  
이러한 맥락 속에서 볼 때, 금식하는 절기를 정하는 것은 아마도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형식주의에 흘러서 금식의 참된 의미를 상실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역사상에는 금식이 적절히 사용된 경우도 있었지만, 금식이 오용된 많은 증거들도 나타나 있다. 고대로부터 율법주의  때문에 이상과 같은 성경적이고 본질적으로 유익한 금식행위가 침해를 당하여, 금식하는 특정한 날과 절기가 정해지고, 먹지 말아야 할 음식과 먹어도 될 음식이 구별되기도 했다. 이러한 잘못된 금식에 대한 반동으로, 복음주의 교회들은 개인의 신앙생활과 교회의 신앙생활에 금식을 적절히 사용하도록 시정하기보다는, 금식행위 자체를 완전히 무시해 버림으로써 금식에 대한 이상의 잘못된 관습을 뜯어고치려고 했다. 그러나 금식 그 자체는분명히 성경적인 관습으로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된 금식에 대한 습관은 복음주의적 입장과 취지에 따라 적절하게 시정되고 금식의 참된 목적이 성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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