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신약에서 세 번 나오지만 때는 아직 이 말의 짝인 '기독교'란 말을 생각할 만큼 무르익지 않았었으며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에 대한 명칭으로서 2세기에 이르러서야 사용되었다. 이 말은 최초로 이그나티우스의 저서들에서 발견되었는데 거기서 이 말은 세상이 대적하고 혐오하는 그리스도인이란 말에 대한 신약의 애호를 한 폐이지에 걸쳐 표명한다. 이 말은 2회에 걸쳐 유대교와 대조되고 있다(Magn, x;Phila.vi). 한 번은 이 말이 일관된 생활양식을 요구하는 진리의 체계로서 언급된다.(Magn.x)
기독교 운동은 유대인 토양에서 시작되었으며 자체의 최초의 개종자들을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서 일으켰다. 새로운 믿음을 고수하는 자들은 나사렛 예수가 메시야이셨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심으로써 그(예수)의 주장을 입증하셨다는 것을 믿는 점에서 그들의 동료 유대인들과 달랐다. 당시의 기독교가 유대교와의 연관에 있어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았었지만 박해가 두 종교 사이에 깊은 쐐기를 박아 놓았다. 유대인 기독교는 비교적 미약함으로 감소되기 전에 바나바와 바울과 같은 헬라어를 말하는 유대인들을 통하여 감동을 받았던 이방인들에게 자체의 유산을 전해 주었다.
기독교는 확실한 특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자체의 창설자가 팔레스틴의 땅에서 일정한 기간에 살았던 역사상의 실제 인물이었다는 의식에 근거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기독교는 신화적인 인물들을 의식하고 창설하여 종교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사리보다는 이념들을 강조하는 종교들과는 다르다.
또한 기독교는 솔직이 계시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 성격에 있어 초자연적이다.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을 더듬어 찾지 않으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자아 계시에 의존한다. 하나님은 구약에 계시를 확증하고 그 계시에 자신의 가르침과 영향력을 덧붙여 부언하신 그의 아들 안에서 성육신하셨다.
그리스도를 보는 것은 하나님을 보는 것 이었다. 기독교에 있어 이적적인 요소는 그것이 초자연성에 부합된다. 기독교에 있어 역사는 더 이상 수수께끼이기를 멎는다. 영원이 시간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신성이 자체를 온전히 계시하고 인간을 하나님과의 친교로 끌어 올리기 위해 인간의 몸을 취하셨다.
이 후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구속의 계획이 필요하였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 중대사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아 희생을 통하여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구원은 믿음을 통한 은혜로 주어진다. 행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심에 대한 근거로서는 제외된다.(엡2:8-10).
기독교 신앙은 또한 독선적이다. 그것은 인간이 그리스도의 복음 외의 다른 방법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러한 확신을 성경의 가르침에서 끌어내며 결코 파벌적인 감정이나 협소한 견지에서 끌어내지 않는다. 이것은 타종교들에서의 선을 부인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모든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기에 충분한, 하나님께서 기꺼이 계시해 오신 진리를 즐거워한다. 칼빈주의는 그 자체로 선교지향적이기를 중단할 때 불쾌한 것이 될뿐이다.
기독교가 단지 교의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기독교의 신앙고백 배후에는 구주에 대한 개인적인 관계가 있다. 기독교 신앙은 외적인 처리 형태에 있어 지역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에서나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한다. 그것의 예배 양식은 교회마다 다를지라도 그것의 주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의 구원의 은혜를 모든 인간에게 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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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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