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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나다, 소생하다

by 소소한행복^^ 2023.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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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우에 '다시 살아나다, 소생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히야(חיה)이고 헬라어로는 아나자오(ἀναζάω)인데 문자적인 의미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 나는 것'이다. "그 아이의 영혼이 다시 그에게로 돌아오고 그가 살아났다"(왕상17:22),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살아나셨다"(롬14:9) 즉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RSV). 이 단어가 이상과 같은 의미로 쓰이지 않을 대조차도 오늘날 이 단어에는 보다 더 큰 의미가 들어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신앙 부흥운동'(revivalism)과 '복음 전도'(evangelism)를 혼동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 전도는 복된 소식이고, 소생함은 새 생명이다. 복음 전도는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고,  소생시킴(다시 살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위해서 베푸시는 것이다. '신앙 부흥을 일으킨다'(holding a revival)는 말은 잘못 사용하는 말이다. 어떠한 인간도 사람들의 양심을 살아나게 하거나 영적인 굶주림의 상태에 있는 사람을  재생시킬 수(이러한 것들이 참된 '소생함'을 의미함) 없다.
  
모든 영적인 생명은 개인의 경우에 있어서나 공동체의 경우에 있어서나 교회에 있어서나 국가에 있어서나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다. 아무도 생맹을 소생시키는 계획을 마련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인 흑암이 캄캄하게 뒤덮이고 도덕은 저 맡바닥에 떨어져 버리고 교회는 냉랭하게 죽어 있고 '때가 차서' 몇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우리가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시85:6) 하는 기도가 하늘에 상달될 때에면 역사적으로 볼 때 다시 한 번 소생의 시기(부흥기)가 몰아닥치게 된 것을 보게 된다. '영적인 소생'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 죄의 고백, 회개, 구원을 거저 주시는 선물(은혜)로 받아들임, 성경의 권위 그리고 그리스도인 생활의 즐거움과 훈련이 포함된다. 영적인 소생은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영적인 소생의 결과(효과)는 언제까지나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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