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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뗌(성만찬, 그리스의 몸에 참예함)

by 소소한행복^^ 2023.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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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떼다"에 해당하는 "클라시스 투 아르투(κλάσει τοῦ ἄρτου)"란 구는 오직 누가복음 24:35과 사도행전 2;42에만 나온다.

눅 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이 단어(클라이시스, 뗌)가 동사로는, 주께서 무리를 먹이심에 대한 것으로 마가복음 8:6,19, 마태복음 14:19,15:36에 나오고, 성만찬에 대한 것으로는 마가복음 14:22(마 26:26;눅22:19 참조)에 나온다. 이 외에도 누가복음 24:30, 사도행전 2;46, 20:7,11, 27:35, 고린도전서 10:16에 나오며 성찬식의 떡에 대한 것으로 11:24에도 나온다. 그러나 이 동사가 칠십인역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히브리어 파라스(פּרשׂ 쪼개다, 부수다, 깨뜨리다)가 때로는 떡에 대한 말이 없이 식사를 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며 이것은 축도와 관련되어 있다. 빵은 밀이나 보리, 혹은 제물을 위해서는 고운 가루로 만들어졌으며 누룩 없는 빵은 유월절에 사용되었다. 쿰란 예식법은 사제들에게, 연회석 앞에서 빵과 포도주 위에 손을 펴 공공연하게 축도할 것을 명한다. 다다케(didache)는 교회 내의 수확을 상징하는 떼어진 빵에 대한 축사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무리를 먹이심에 있어 한 농부 소년의 일상적인 점심용 보리떡과 생선을 사용하셨다(요6:9). 백명과 오십명씩 떼를 지어 앉았던 것(막6:40)은 쿰란 연회법에 따른 것이었을 것이다.

요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막 6:40/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만일 요한복음 6:53이하의 절들을 성례식에 관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예수께서는 그 때의 식사를 메시야적인 잔치나 성찬식에 대한 참여로 여기셨을지도 모른다.
    
일상적인 식사가, 예수의 특징적인 행동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주는 누가복음 24:35에 언급되어 있다. 사도행전에서는 떡을 뗌이 첫째, 성찬식이나 예찬을  의미하며 둘째, 일상적인 식사를 의미한다. 여기서 전자에 관한 것으로는 27:35을 생각할 수 없고 20:7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관사가 붙은 2:42의 것도 이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페시타(Peshitta)는 본절(42)의 것을 '성찬식의 떡을  뗌'으로  번역한다.
  
일상적인 식사에 적용되는 '떡을 뗌'이란 말은 사도행전의 각 해당절에 걸맞게 사용되고 있으며 잔에 대한 언급의 부재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고린도전서 10:16에서, 함께 떡을 떼는 그리스도인은 코이노니아 투 소마토스 투 크리스투(κοινωνία ἐστὶν τοῦ αἵματος τοῦ Χριστοῦ,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라 불리워진다.

고전 10:16/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이것은 제단과의 관계를 포함하고 그리스도의 몸, 곧 많은 지체들의 공동체에의 참여에 해당하는 유대인들의 의식적(儀式的)인 식사에 비교된다. 고린도전서 11:17-34에서는 교회에서의 공동 식사가 언급되는데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그의 죽으심을 기념하여 성찬식이 집행되고 떡을 떼게 된다. 바울(고전11:24)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란 그리스도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곧 25절에서 새 언약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주제를 덧붙임으로써 고린도전서 10:16을 상기시키는 것 같다.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졌다는 화해의 표식이 된다. 신약의 교회에서는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때에 시행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성찬이 시행되었으며, 이러한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된 몸임을 확인한다. 즉 주님의 살과 피로 상징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하며 주님과 교제를 나눈다는 의미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다른 신자들과 서로 하나 된 지체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고전 10:16-17/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참예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이노니아'는 '교제'(communion)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만찬의 떡과 잔을 받아 먹고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서 바울은 성만찬의 원래 순서와는 달리 '떡'보다 '잔'을 먼저 언급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을 강조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잔과 떡은 그리스도의 피와 몸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것을 먹고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와 살과 피를 먹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본절의 전체적인 의미는 그들이 떼어 먹는 떡이 한 덩어리인 것처럼 비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고 할지라도 실상 그리스도인들은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한몸이니"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혹자는 '한 몸'(헨소마 εἷς σῶμα)이란 '그리스도의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의 유기적인 단일체'(the organic unity of the congregation)를 뜻한다고 한다(Grosheide). 그러나 본절에서는 성도와의 연합의 관점에서 언급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뜻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Meyer, Godet, Osiander). 왜냐하면 16, 17절에서 한 떡을 떼므로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한 덩덩어리의 떡을 떼는 의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모든 교인들이 하나의 신비한 영체(靈體)를 이루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엡 5:23;골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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