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고하다"의 뜻인 히브리어 '파가(פּגע)'는 본래 '(생각이) 떠오르다'란 의미를 지닌 단어였다. 훗날에 좋은 의미로 사용되면서, '청원하므로 추궁하다'란 뜻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추궁'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했을 때 그 의미는 '도고하다'였다.
'도고하다'란 의미로 사용된 헬라어 동사는 엔튀그카노(ἐντυγχάνω)로 신약에서는 다섯 번 나온다(행 25:24;롬8:27,34;11:2;히7:25). 명사 엔튠식스(ἔντευξις)는 디모데전서 2;1에서 보여지는데 4:5은 오직 '기도'로만 번역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먹으려고 준비한 '음식물'을 위하여 '도고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딤전2:3).
▪︎엔튀그카노(ἐντυγχάνω)의 사전적 의미:
- 사람이나 사물에 빛을 비추다, 사람이나 사물에 빠지다, 부딪히다
- 특히 대화, 상담 또는 간청을 목적으로 사람을 만나거나 가다
- 기도하다, 간청하다
- 아무에게나 중보하다
영어의 '도고'(intercession)는 '사이로 가다'(혹 통과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인테르케도로부터 온 것이다. '도고'가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는 사실은 바울의 다음 기록에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딤전2;1). 이것은 일반적으로 찬미나 청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에 선 그들 대신에 간청을 하는,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의 관심을 의미한다. 이 말이 그리스도의 중재로 사용될 때에도 역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의 지혜서들에는 도고에 대한 예화나 도고를 위한 권면이 전혀 없으며 시가서들 안에서도 그 예를 별로 찾아 볼 수 없다(욥1:5;42:8;시20장;25:22;35:13). 예언서 안에는 비록 그들이 주로 주님의 대언자들이긴 했어도 도고를 한 예가 굉장히 많이 보인다. 이사야 6, 25장, 그리고 37장에서 도고의 모습이 특별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레미야 10:23 이하, 그리고 14:7 이하, 에스겔 9:8, 11:13, 그리고 다니엘 9:16-19에도 그러한 기도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도고는 소선지서 안에서는 더욱 보기가 힘들다. 주님이 용서해 주시기는 했지만 요나는 니느웨를 위해 도고를 하지 않았다(욘4장). 말라기 2:7은 제사장들이 도고하지 못하였음을 암시하며 요엘 2:17에서는 제사장 직분이 도고적 성격을 띠었음을 보여 준다.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자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이 여기소서...".
우리가 가장 빈번하게 도고의 예를 발견하게 되는 곳은 역사서들 내에서이다. 한 예는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열심히 도고를 한 것이다(창18:23-33).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한 것도 이런 성격을 지녔다(창48:8-33). 모세는 신앙의 사회적 성격에 대해 고견을 지닌 자로 수많은 경우에 주님께 중보적인 기도를 드린 훌륭한 행동을 볼 수 있다. 그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겼던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했다.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주옵소서"(출32:31,32).
재판관이며 제사장이고 예언자인 사무엘도 역시 자주 자기 백성을 위해 변호했다. 또한 사무엘은 사울의 점죄에 대해 근심하며 온 밤을 여호와께서 부르짖었다.(삼상 15:11)
도고는 신약을 통해서 더욱 강조되고 실행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까지라도 그들을 위해 도고할 것을 강조하셨다(마5:44). 예수는 베드로에게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눅22:32) 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내용은 사도들을 위한 예수의 대제사장적 도고의 예증이 된다. 사도행전에서 보면, 초대 교회는 베드로(12:5-12), 바나바와 사울(13:3) 등을 위해 자주 도고를 했다. 서신서에는 이러한 예가 매우 많이 나온다. 신약에서는 성령께서도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롬8:26)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나타나...계시다".(히 9:24)
성경 내에 나오는 도고에 대한 사항은 특별히 이 존귀한 특권에 관하여 몇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그것의 당연성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기독교인에게는 호흡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그가 위해서 기도하는 자들에 대한 서약의 의미로 세례를 받을 수 있다. 그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움츠러 들고 그들의 깊은 상처를 상상하며 쑤시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또 하나는 어떤 사람이 획일화된 인류 전체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며, 인간의 처한 상황과 모든 종류의 인간을 위해 단순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개인을 위해, 피흘리는 그들의 상처와 조롱으로 인한 그들의 고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물론, 중보의 기도를 하는 자들은 천국의 향기를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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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중보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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