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의 자식들아', 이는 예언적 전통에 속한 선언이다(사 14:29;30:6).
사 14:29/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 열매는 나는 불뱀이 되리라
사 30:6/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 보물을 약대 제물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요한은 광야에서 흔히 블 수 있는 독사들을 보며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간교한 뱀을 연상하였을 것이다. 현대처럼 저속한 욕설이없던 시대에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였던 그들에게 저주받은 뱀(창 3:14)의 후예라고 욕한 것은 위선과 변절, 기만 등으로 길들여진 그들을 향한 신적 권위에 의거한 화(禍)의 선포였다. 예수께서도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해 같은 책망을 하신 적이 있다(마 23:33).
마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이 욕설은 '아브라함의 자손'(9절)으로 자랑하던 그들에게 사단의 도구인 뱀의 후예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사악한 실체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엘리야로 예언된 세례 요한이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등장하여 등장하여 천국을 선포(2절)할 때 이미 '임박한 진노'가 암시되어 있었다(말 3:1, 2;4:1, 5).
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런데 세례 요한의 이 당황스런 질문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단지 임박한 진노를 당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을 자각케 하고 끝내 그들로 하여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려는데 있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진노란 말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뜨거운 감정을 인격화한 표현으로서 이것은 하나의 정태적(靜態的) 감정이 아니라 참으로 무서운 실제적이며 존재론적 극형(極刑)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한편 '임박한 진노'는 이방인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 영접을 준비(회개)하고 있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 홀연히 다가오는 종말론적인 것이다(살전 1:10). 물론 이 진노는 A.D.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훼파됨으로서 1차 성취되었지만 예수의 재림으로 인한 마지막 심판 때에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계6:16, 17).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마 3:8)
'임박한 진노'를 피하기 위한 참된 방법이 제시된다. 즉 사단이 그들에게 귀뜸해준 위선적 종교 행위와 같이 단지 형식적인 세례 행위로는 임박한 진노를 피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운)외식적인 태도를 버리고 참된 회개(2절 참조)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란 말이다. 여기서 '합당한'(앝시오스)이란 단어는 '같은 분량의'란 뜻으로서 마음속의 실제 회개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행위(열매)로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을 뜻한다. 바리새인들은 외형적으로는 많은의로운 일들(righteousness actions)을 행하였으나 그들의 내면은 결코 의롭지 않기(not righteousness) 때문에 하나님의 기준에는 합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사람이건 외견상 의로운 행동들을 할 수 있으나 그에 합당한 열매는 맺지못한다. 즉 내면이 청결한 사람만이 오직 의로운(올바른, 좋은) 행동들과 하나님께 기억될만한 열매들을 추수할 수 있는 것이다(Bruce). 한편 여기서는 열매가 단수(칼폰)로 묘사되었는데 비해 본절과 평행 구절인 눅 3:8에는 복수(칼푸스)로 표현되었다. 이 차이는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조화가 가능하다. 즉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변화된 삶에 따른 여러 종류의 은혜로 여겨지기 때문에 복수로 표현될 수 있으며(21:3), 그 열매들의 뿌리는 오직 하나라는 점에서 단수(갈 5:22)로 묘사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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