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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으로 흥한 자 검으로 망한다

by 소소한행복^^ 2023.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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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 26:52)


다른 공관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마태복음도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다치게 한 주인공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그 장본인은 바로 베드로였다(요 18:10). 더불어 요한은 베드로에게 귀를 잘렸던 대제사장의 종이 '말고'라는 이름의 사람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혹자는(Robertson) 마태복음을 비롯하여 공관복음서가 베드로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복음서가 기록된 후인 A.D. 68년까지 생존했었던 베드로의 안전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하튼 베드로의 행동은 심리적으로 보아도 수긍이 간다. 예수로부터 여러 번에 걸쳐서 변절(變節)하리라는 경고를 들은 그로서는 자신의 충성심을 시험하는 때가 드디어 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신의 폭력 행위를 말리고, 또 순순히 결박을 받으시는 것을 보고는 충동적인 용기가 사그러졌을 것이다. 어쨌든 그의 극히 감정적인 충성심의 표현은 사실상 주께서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베드로가 참다운 충성심을 보여 줄 수 있기 위해서는 아직은 더 많은 연단을 거쳐야 할 것이다. 한편 베드로가 체포되지 않은 것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는 견해도 있지만 그것은 예수께서 즉시 상황을 진정시켰을 뿐 아니라 떨어진 귀를 원상 회복시켜 주었으므로 더이상의 문책(問責)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눅 22:51). 한편 예수의 제자 중 한 명이 '검'을 휘둘렀던 점과 눅 22:49에서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라고 '우리'를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자들 모두가 '검'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예수의 제자들이 열심당의 극좌파인 '시카리'파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10:34 ; 눅 12:49-51 ; 22:36).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해석인 듯하다. 오히려 이때 베드로는 예수의 수난 예고가 있은 후부터 예수의 신변을 보존할 목적으로 단검을 준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칼을 사용한 베드로에게 보인 예수의 반응은 칼을 놓으라는 명령인데 공관복음서에서는 마태복음만 이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마 26:52). 그리고 이 표현대신 누가는 잘리워진 귀를 만져 낫게 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눅 22:51). 특히 마태복음은 칼을 사용한 사실에 대해 채강하고 훈계하는 장면을 관심 깊게 묘사하고 있는데 반해 누가복음은 원수를 치료하고 싸매는 모습을 통해 사랑과 화해의 실천자로서의 예수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본서는 메시야적 사역에 깊은 의미를 두었으므로 칼 사용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다.



"검을 가지는 자는 검으로 망하느리라"
이는 마태복음에만 나오며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평행구가 없다. 한편 계 13:10에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라는 말이 나오며, 창 9:6에도 이와 비슷한 의미의 말이 나온다.

창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따라서 이 말은 적어도 하나의 격언구로 사용된 듯 하며 예수에 의해 영원한 진리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물론 예수께서는 이와 흡사한 맥락에서 마 5:39 이하에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 보복하지말라고 가르치신 바 있다.

마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적어도 이 말씀 속에는 생명예 대한 존엄 사상이 들어있는 바, 인간의 생명은 참으로 신성하며 그것을 해하는 자에게 징벌이 주어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意志)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단순한 평화주의에의 호소라고 해석한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고 한 것이지 내어 버리라고는 하지 않았다고 하는 점을 강조하며 검의 사용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려 한다. 두 가지 주장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으나 본문의 직접적인 뜻과는 거리가 멀다. 적어도 본문의 문맥상 검의 사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근거를 이끌어 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무력 앞에서의 무기력한 굴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몇 가지 저의는 (1) 칼을 사용함으로써 불의한 판결을 일삼는 사악한 집단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꼴이 되며(Luther), (2) 칼은 하나님 나라의 지배 원리에 반하는 세상 국가들의 힘의 통치력을 대변하는 것이므로 칼의 사용을 금하신 것이다.(요 18:36).

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이와 함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해하려고 검과 몽치를 가지고 올라온 무리와 그 무리의 배후 세력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고 계신다. 즉 너희들이 '검'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고귀한 생명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하려 하지만 결국에는 너희 자신들이 '검'앞에 거꾸러짐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한편, '말고'는 귀가 잘려나간 대제사장의 종을 가리키는 이름인데 공관복음서에서는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요한에만 언급되고 있다. 이것도 역시 사건 현장을 사실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신뢰성을 높이고 당시의 정황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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