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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by 소소한행복^^ 2023.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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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스는 눅 3:2;행 4:6에서도 언급되고 있는데 누가는 안나스 직책을 대제사장 가야바와 함께 언급함으로써 안나스가 대제사장인 것처럼 이해하게도 한다.

눅 3: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허나 요한은 안나스의 직책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그해 대제사장 가야바와 구분함으로써 당시 안나스는 대제사장이 아님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안나스는 A.D. 6-15년 사이에 대제사장의 직책을 맡았던 사람인데 그에게 아들 다섯이 있었다. 그 아들들 역시 제사장을 맡았었다며 본문에 언급된 사위 가야바도 대제사장이었다. 본래 대제사장은 종신적이었으나 로마의 지매가 시작된후 대제사장직이 막대한 부와 권력에 의해 좌우되어 로마에 대한 적극적인 추종자들에게 주어짐으로써 자주 교체되었다. 안나스 역시 로마 총독 그라투스(Gratus)에 의해 폐위되었다. 그런데 무리들이 예수를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데려가지 않고 그의 장인 안나스에게로 데려간 이유가 무엇인지 본문에 언급되지 않아 알수 없다. 아마 안나스는 대제사장 직위에서 폐위 당했으나 그의 사위가 대제사장이었으므로 대제사장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가졌던 사람으로 짐작된다.


가야바는 예수께서 사역을 하였던 기간에 대제사장으로 활동하던 자였다. 유대 백성들이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일들이 점점 확대됨에 따라 그것이 필경은 로마의 공격을 초래하리라는 염려에서 그는 '산헤드린의 회원들에게 예수를 죽이는것이 모두를 위하여 유익하다'고 말했었다. 이러한 그의 권고는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비롯된 것이지만 결국에는 예언적 의미로 예수의 죽으심과 결부되었던 것이다(요 11:51, 52).

예수께서 체포당하신 해의 공식적 대제사장은 가야바였으며(요 11: 13절)예수가 붙잡혀 온 곳은 안나스가 있는 곳이었다(요 11: 13절).

따라서 본문의 '대제사장'은 안나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24절을 볼때 더욱 명확해진다. 그런데 혹자는 본문의 대제사장이 가야바를 가리킨다고 보고 안나스는 단지 원로로서 참관한 것이라고 한다(Godet, Westcott). 이러한 해석은 다른 복음서들이 안나스에 의한 심문을 전하지 않고 가야바에 의한 심문만을 전하고 있는 것과 일치시키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안나스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안나스 앞에서의 심문은 유죄를 위한 예비 심문이라고 보는것이 타당하다. 즉 요한은 안나스에 의한 예비심문을 전해주는 것이고 다른 복음서들은 가야바에 의한 공식 심문을 전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해의 대제사장이 아닌 안나스(13절)을 가리켜 대제사장이라고 했는가? 그것은 본래 대제사장직이 종신적이었고 여전히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참고로 요 15: 3절에서 요한은 '대제사장들'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그것이 여러 사람이 대제사장직을 동시에 맡고 있었음을 뜻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그것은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를 포함시켜 그렇게 불렀던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런 점에서 안나스를 '대제사장'으로 부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편 '다른 제자', 즉, 베드로와 더불어 체포되어 끌려가는 예수의 뒤를 따라갔던 두 제자 가운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제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있다.

요 18: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아리마대 요셉(19:38)이나 니고데모(3:1-15;7:50-52;19:39)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는가 하면 저자의 동생인 야고보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Godet, Watkins) 그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예수의 사랑하시던 제자' 즉 요한 자신일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Lenski, Robertson)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그러나 여기에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한낱 갈릴리 어촌의 어부에 지나지 않는 요한이 어떻게 유대의 최고 지도자인 대제사장 안나스와 친분관계를 가질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혹자는 요한이 제사장 가문의 출신이기 때문에 대제사장과 친분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이는 실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오히려 요한이 예수의 제자로서 예수와 함께 고난에 동참하지 못했던 자신의 나약했던 당시의 모습을 연상하면서 그제자가 자신이라고 밝히지 않았을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그리고 본절의 설명을 통해 베드로와 자신이 어떻게 그 법정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주어 법정안에서의 모든 일들이 직접 두 제자에 의해 목격된 진실임을 암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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