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대(Media)는 이란 서북부, 카스피 해의 남서쪽, 자그로스 산맥의 북쪽에 대한 이름이다.
메대인들은 이란 북서부 지역에 살았던 민족이며 그들의 수도는 에크바타나(Ecbatana)였다. 메대인들은 아리안족의 후손으로서 소금 사막(the Salt Desert)과 페르시아,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저지대 사이에 있는 이란 북서부의 고원 지방에 거주하였으며, 성경 기록으로는 창 10:2에 처음 나온다.
창 10:2/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마대는 이란 북서부에 거주하던 메대인(Median)들의 조상이다(왕하 17:6;사13:17). 훗날 이들 민족은 바사(Persia) 제국에 흡수되었다.
메대의 거주자들은 야벳의 후손으로(창 10:2), 이들은 앗수르 왕 살만에셀 3세에 의해 그 이름이 처음으로 언급되었는데, 이 왕은 BC 836년에 그들의 평원을 침공하여 명성이 높고 잘 길러진 말들을 노획했다. 그를 계승한 자들은 모두 '메대와 바사의 땅'을 정복하였다고 주장했다(왕하 17:6;18:11). 메대는 BC 600년에 쇠퇴하는 앗수르에 대항하여 앗수르 북부 전역을 차지했다. BC 550년에 바사의 고레스는 메대를 정복했으며, 그 결과 두 국가의 풍습과 법률이 혼합되었다(단 6:8). B.C. 550년경 페르시아에 합병되었으니 곧 페르시아 왕 고레스 때의 일이다.
메대에서 이루어진 유대인의 역사는 에스더서에 상술되어 있다. 메대 출신의 유대인이 오순절 예루살렘에 있었음이 신약에 언급되었다(행 2:9).
메대(Media)는 지금의 이란 북서 지방에 위치했던 나라이다.
메대인들은 오랫동안 앗수르의 시달림을 받아왔으며 특히 사르곤 왕 때에는 부족의 일부가 점령당하여 일단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메대의 여러 마을에 강제로 이주되기도 하였다(왕하 17:6). 선지자가 이 예언을 할 당시만 해도 메대는 앗수르의 지배를 받는 미약한 세력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본래 호전적인 그들은 B.C. 714년경에 독립된 나라를 형성하였으며 그로부터 1세기 뒤에 바벨론과 함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공략하기도 하였다(B.C.612년). B.C. 539년, 메대-바사 연합군이 메대인들은 아리안족의 후손으로서 소금 사막(the Salt Desert)과 페르시아,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저지대 사이에 있는 이란 북서부의 고원 지방에 거주하였으며, 성경 기록으로는 창 10:2에 처음 나온다바벨론을 점령한 사실에 기초하여 일군의 학자들은 본문이 그 후에 기록되었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맞다면 후대의 작가가 본문을 작성할 때, 바벨론 점령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바사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선지자가 본문에서 바사 대신 메대만을 언급한것은 아마도 그들이 당시 사람들에게 광포하기 그지없는 사나운 민족들로 알려졌었기 때문일 것이다(Oswalt, G.W.Grogan).
메대인이들은 B.C. 550년 고레스의 침략을 받고 그에게 정복되었다. 메대가 단독으로 바벨론을 침략한 일은 없지만, 고레스의 모친이 메대인이었고, 메대는 바사에 병합되었으며 그래서 메대와 바사는 구약에서 여러 번 함께 결부되어 언급된다(단 5:28; 6:8, 12 등).
• 메대 도(道) 악메다 궁
"이에 다리오왕이 조서를 내려 서적 곳간 곧 바벨론에서 보물을 쌓아둔 곳에서 조사하게 하였더니 메대도 악메다 궁에서 한 두루마리를 얻으니 거기 기록하였으되"(스 6:1-2)
한편 고레스의 조서에 나오는 '악메다'는 페르시아 왕들의 여름 휴양지이다. 한편 '악메다'는 아람어이며, 그것의 헬라어 형태는 '에크바타나', 그리고 페르시아어로는 '하그마타나'이다. 이 도시는 원래 메대 제국의 수도였고, 고레스에 의해서 B.C. 550년에 정복되었다. 한편 여기의 '궁'(비르타)은 '요새'의 의미가 있는 아카디아어 '비르툼'에서 온 단어로서, '악메다'가 요새화된 도시였음을 잘 보여준다(Fensham). 이와 같은 도시 '악메다'는 메대 왕국의 창건자 데이오세스에 의해서 건설되었으며, 특히 왕이 살던 궁전은 7중의 원형벽으로 둘러싸여져 있었다고 한다(Herodo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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