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압은 사해 동쪽에 위치했던 모압(Moab)은 이스라엘과는 비교적 좋은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신 2:9;룻 1:1)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녔을 때 그에게 큰친절을 베푼 나라이기도 하다(삼상 22:3, 4).
모압은 롯과 그의 장녀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창 19:30이하), 모압 족속의 땅 중심지는 아르논 강과 제레드 강 사이의 사해 동쪽에 위치한 작은 골짜기 지대였다.
창 19:30/ 롯이 소알에 거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 거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하였더니
창 19:33/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창 19:37/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모압족속은 BC 1850년경까지는 정착민으로 살고 있었으며, 그 이후에는 유목민이 되었다. 롯의 후손들은 그들이 지배적인 민족으로 등장하여 전인구와 지역을 그들의 이름으로 개명시키기까지는 그들과 통혼하였음에 틀림없다.
모압 족속은 BC 1300년경에 좋은 농경, 훌륭한 건축물, 국경에 있는 강한 요새들을 갖춘 고도로 조직화된 왕국이 되었다.
모압 족속은 독특한 도자기를 만들었으며, 아르논 강의 북쪽 고원에서 몰려 나와 그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암몬 족속과 그 땅을 공유했다(참고. 신 2:10이하). 모압 족속은 침입자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삿11:17),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쫓겨난 족속이긴 해도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 명령을 받았다(신 2:9;23:3이하).
모압 왕은 발람을 통하여 침입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고자 했으며(민 22-24장), 그들을 우상 숭배에 빠지게 했다(민 25장).
그들은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을 공격 했으며(삿 3:12이하), 사울과 전쟁도 했다(삼상 22:3,4). 다윗의 여자 조상인 룻은 모압 출신이다(룻 4:18이하). 다윗은 모압 족속을 정복했지만(삼하 8:2이하), 그들은 훗날에 유다 왕들에게서 자유를 얻기 위해서 투쟁했다(예. 대하 20장).
삼하 8:2/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저희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그런데 다윗이 이러한 나라를 정복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다스린 것을 보면, 아마도 그 이후 다윗을 알지 못하는 자가 모압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 다윗과 이스라엘을 크게 위협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Lange, Leon Wood). 아무튼 이처럼 다윗이 모압을 정복하고 그들을 조공국으로 삼은 것은 발람의 예언(민 24:17)이 성취된 사건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BC 8세기에 모압은 앗수르에 의해 정복되었지만(사 15-26장), 다시 자유롭게 되었다가 바벧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다시 정복당했다. 모압은 독립된 나라는 되지 못했지만, 이스라엘의 바벨론 유수 이후에 하나의 족속으로 여전히 알려져 있었다(스 9:1;느 13:1). 선지자들은 종종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알렸다(예. 사 15-16장;렘 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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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Moab, 모압족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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