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선교적 교회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파송받은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받은 그대로 제자들을 부르시고 세우셔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제자들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합니다. 강조법으로 사용된 '나를'과 ‘나도'가 '보내심'의 상관 관계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즉 예수님께서 성부로부터 사명을 부여받아 세상에 오심같이 자신도 역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어 세상에 보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성부에게서 받은 사명을 제자들도 수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절에서 두번 반복된 '보내다'의 헬라어 '아포스텔로'는 '펨포'와는 달리 어떤 사명을 부여해서 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 '아포스텔로'동사에서 사도'(아포스톨로스)란 단어가 파생되었습니다(Robertson). 사도와 선교사는 같은 뜻으로 사명(commission)을 가지고 보냄 받은 자로서의 존재가 강조됩니다.
아포스톨로스 ἀπόστολος는 바다 항해를 하는 군사적 목적의 함대나 함대장, 혹은 외교적 목적을 지닌 사절단을 의미하는 용어였습니다.
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또한 '보내신 것같이'는 사명을 주는 방법에서 뿐 아니라 보내시는 자의 인격이 동일함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을 보내신 분의 인격과 우리를 보내신 분의 인격이 동일함을 의미합니다.
보내신 인격이 동일, 보내심의 방법 동일, 보내신 이유(사명)이 동일합니다.
롬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은 최소한 다음 두가지 사실을 암시합니다.
(1) 보내신 분은 높은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이시며(마 28:18,19/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 보내심을 받은 자의 메시지는 그 자신이 아니라 보내는 자에 의해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면에서 구약의 선자자들은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었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요 3:34;7:16).
이것은 동시에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집니다.
모든 성도는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않은 복음 전파자란 있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궁극적으로 모든 성도들이 예수의 복음 전도자로서 전세계에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며 그 결과로 전파된 말씀을 듣고 열방들이 기뻐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Godet).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구약성경)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사 52:7의 인용합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 동안 황폐되어 있었던 예루살렘 도성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로써 그 자신의 주장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원래는 바벨론 포로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이 가까왔다는 기쁨과 평화의 선포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신약에서는 복음의 전달로 해석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왕 고레스 치하(治下)에서부터 구출을 받은 것은 모세에 의하여 애굽왕 바로의 치하에서 구출을 받은 것처럼 아름답고 복된 소식이었습니다. 이러한 구원과 회복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출받는, 즉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루어질 보다 완전하고 큰 구원을 소망하며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 유대 민족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이스라엘로 돌아가리라는 메시지가 기쁜 소식이었다면 하나님의 아들 안에 영원한 구원의 약속이 있다는 메시지는 그보다 훨씬 더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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