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왕상 11:3)
솔로몬이 많은 이방 여인들을 왕비로 맞아들인 결과, 그 여인들은 각자 자기 민족의 신(우상)들을 가지고와서 숭배했다. 분명 왕비들은 갖은 방법으로 솔로몬을 회유했을 것이고, 이에 솔로몬은 그러한 신들의 숭배를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이방 신들을 위해 산당까지 지었던 것이다(7, 8절).
왕상 11:7-8/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저가 또 이족 후비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저희가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솔로몬이 이러한 종교적 혼합주의(混合主義,Suncretism)는 이방 국가들의 호의를 얻어 동맹을 더욱 공고히하는 데는 성공했을 지모르나 이방의 우상 숭배를 거듭거듭 경고하고 엄히 금하신 율법의 말씀을 어긴 것으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솔로몬의 말년부터 이스라엘 내에 자리잡게 된 이방 우상의 산당들은 이후 분열 왕국 시대동안에도 줄곧 심판의 대상이 되었고, 마침내 남북 왕국 멸망의 주된 원인이 되고 말았다.
"왕비들이....다른 신들을 좇게 하므로"(왕상 11:4)
솔로몬의 타락을 고발하는 본절의 초점은 솔로몬이 단순히 이방 여인들을 많이 취하였다는 사실에 주어져 있지 않다. 비록 솔로몬의 처첩들의 숫자는 놀랄 만한 것이지만,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일부 다처 자체만을 심각히 비난하기는 어렵다. 다윗만 해도 왕비 7명, 첩이 최소한 10명 이상이었다(대상 3:1-9). 따라서 본절이 보다 부각시키고 있는 점은, 솔로몬의 왕비들이 솔로몬으로 하여금 우상 숭배로 빠지게 하는 함정구실을 하였다는 데 있다. 신명기의 경고도 바로 이 점을 겨냥한 것이었다(신 7:3, 4; 17:17).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모압 여인들과 놀아나다가 우상 숭배에 빠졌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았던 뼈아픈 경험이 있었다(민 25:1-5). 따라서 이방 여인과의 접촉에 따르는 위험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그러나 본절은 솔로몬이 이러한 생생한 역사적 교훈에도 불구하고다시금 그 그물에 걸리는 비극을 보여 준다.
"저희가 자기의 신들에게...제사하였더라"(왕상 11:8)
비록 솔로몬이 왕비들에게 각자의 신을 섬기도록 허용했다지만, 이 왕비들이 자신의 신을 섬기는 데 적극적이고 열심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것은 반대로 솔로몬이 이방 왕비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소개하는데 흥미가 없었음을 입증해 준다. 이러한 이면에는 솔로몬 자신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하였음과 솔로몬의 통치 방향이 일종의 혼합주의, 즉 주변 국가들의 종교와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쪽으로 잡혀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Dentan). 아무튼 다윗 역시 한때 중한 죄를 범하긴 하였으나(삼하 11:2-27), 솔로몬처럼 우상 숭배의 가증스러운 길로 들어서지는 않았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 아내들로 각자의 신들을 섬기도록 허용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 산당을 짓기까지 하였다. 또한 솔로몬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게을리하였던 반면에 그 아내들이 열심으로 그들의 신을 증거하였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칼하다. 이렇듯 사단은 누구든 교만하고 방만한 틈을 발견하면 걸코 이를 놓치려 하지 않는다. 한편 솔로몬에 의해 세워진 이교 산당은 이후 계속하여 이스라엘의 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훗낳 느헤미야는 포로 귀환민들에게 이방인과의 통혼을 경고하면서, 솔로몬의 범죄를 예로 든 바 있다(느 13:26, 27).
느 13:26-27/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저는 열국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저로 왕을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저로 범죄케 하였나니 너희가 이방 여인을 취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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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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