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에셀은 앗수르의 여러 왕들의 이름으로 '술만신은 나의 주님이시다'란 뜻이다. 이스라엘의 호세아를 정복한 사람(왕하 17:3)은 사마리아를 멸망시킨(왕하 17:6), 디글랏빌레셀 3세 아들인 살만에셀 5세(BC 727-722년)였고, 그의 또 다른 아들 사르곤 2세는 BC 722-721년에 이스라엘을 정복했다.
왕하 17:3/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올라와서 호세아를 친고로 호세아가 신복하여 조공을 드리더니
여기에 나오는 살만에셀(Shalmaneser)은 디글랏 빌레셀 3세(15:29)의 아들인 살만에셀 5세(B.C. 727-722)이다. 그의 왕명은 일명 '울룰라이'(Ululai)로 알려져 있다(Hobbs). 그런데 그는 무슨 연고인지 분명치 않으나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있던 때에 죽었으며 그의 후계자로는 그의 형제는 사르곤 2세(Sargon II, B.C. 722-705)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성을 함락시킨 왕은 사르곤 2세임이 분명하다(B.C. 722). 그러나 바벨론 열왕기에는 사마리아 전투에서의 종국적인 승리자가 살만에셀로 나와 있다(K. Gravson, H. Tadmor). 이것은 아마도 그가 가장 수훈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된 것이다.
"호세아가...조공을 드리더니"
살만에셀 5세의 아버지인 디글랏 빌레셀 3세는 베가를 친 후 호세아의 반역을 도와(15:29, 30) 호세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고 그에게 조공을 명했다(Bahr). 그러나 디글랏 빌레셀이 죽자 호세아는 더 이상 조공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니 이에 다시금 살만에셀이 호세아를 쳐 조공을 바치게 한 것이다(Pulpit Commentary). 한편 여기서 '조공'이라는 단어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민하'는 본래 '봉헌하다', '바치다'라는 뜻으로서(3:4) 주로 소제물(素祭物)이나 '희생 제물'을 가리킨다(창 4:3 ; 출 30:9 ; 레 6:20 ; 왕상 8:64 ; 암 5:25). 그러나 본절 및 삿 3:15, 17, 18 ; 삼하 8:2등에서 이 단어는 지배자에게 바치는 공물(貢物)을 가리키고 있다.
살만에셀 3세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BC 853년 카르카르에서 이스라엘-수리아 연합군과 싸워 다메섹의 하사엘을 멸망시켰다(참고. 왕상 19:15).
왕상 19:15/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앗수르 왕 살만에셀 3세(B. C. 859-824)의 비문을 보면 예후의 이름이 두 번 언급되어 있다. 이 비문에 따르면 예후는 하사엘로부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공물을 바쳤다는 것이다(Ancient Near Eastern Texts, p.280; Ancient Near East in Pictures, p. 351-355). 그리고 이 비문 예후를 '오므리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옳지 않다. 그러나 그 비문에서 그렇게 기록한 것은 오므리 왕조가 이스라엘 왕조 중에서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사르곤 2세(B. C. 722-705)의 시대까지 이스라엘은 오므리 왕조로 알려져 있었다(C. C. Smith).
"앗수르왕 디글랏빌레셀에게 사로잡힌 자라"
대상 5:6/ 그 아들은 브에라니 저는 르우벤 자손의 두목으로서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로잡힌 자라
앗수르는 3차에 걸쳐 북왕국 이스라엘 치하(治下)의 팔레스틴을 원정하였다(제 1차:B.C. 743년, 제 2차:B.C. 735년, 제 3차:B.C. 733-732년). 본절의 사건은 그 중 B.C.733년의 원정 때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때에 디글랏빌레셀은 팔레스틴 전역을 침공하였고 이스라엘 대부분의 도시들을 정복하여 그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다(왕하 15:29). 한편 그때의 디글랏빌레셀은 살만에셀5세의 아비인 디글랏빌레셀 3세(Tiglath-pileser III, B.C.745-727)이다.저의 형제 - '형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흐'는 '형제'라는 뜻 이외에 '친족'을 의미하기도 한다(창 13:8;29:15;신 24:7). 그리고 같은 지파의 사람을 지칭할 때에도 이 용어가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민 16:10;삿 14:3). 본절 역시 바로 그와 같은 경우이다. 왜냐하면 브에라의 형제로 소개된 여이엘, 스가랴, 벨라는 실상 브에라와는 전혀 다른 시대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10절). 한편 여이엘(Jeiel)은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심'이란 뜻이며 스가랴(Zechariah)는 '계속하다'란 뜻이다.
삼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왕하 18:9-11/ 히스기야왕 사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칠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삼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의 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구년이라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할라와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여기서 3년이란 기간은 히스기야 4년에서 6년까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는 만 3년이 아닌 2년 몇 개월에 해당된다. 이러한 기록은 17:5의 기록과도 일치한다. 한편 본문에서 사마리아성을 에워싼 자는 분명히 살만에셀로 나타나 있다(9절). 그러나 정작 그 성을 함락시킨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대개의 학자들은 사마리아 성이 함락된것을 B.C.722년 사르곤 2세의 원년의 일로 본다. 그럼에도 블구하고 그 성을 함락시킨 공적은 살만에셀에게로 돌려지곤 하는데 그 만큼 살만에셀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앗수르로 옮겼더라
왕하 15: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앗수르의 공식적인 기록들에는 포로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이 정복자로서 포로들을 납치해 가는 것은 앗수르의 정책상 정당한 것이었다(M. Cagan). 아마도 앗수르는 대외적인 명예를 생각해서 포로에 대한 기록을 생략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본 구절을 역사적으로 증명해 주는 역대서에는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속한 지명들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어 이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대상 5:26). 또한 그후 앗수르의 살만에셀 5세(Shalmaneser V, B.C. 727-722)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번째로 포로로 잡혀갔는데 이는 모두 신 28:36의 성취이다(Wycliffe).
신 28:36-37/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램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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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에셀(Shalmane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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