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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중보 기도) "도고하다"의 뜻인 히브리어 '파가(פּגע)'는 본래 '(생각이) 떠오르다'란 의미를 지닌 단어였다. 훗날에 좋은 의미로 사용되면서, '청원하므로 추궁하다'란 뜻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추궁'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했을 때 그 의미는 '도고하다'였다. '도고하다'란 의미로 사용된 헬라어 동사는 엔튀그카노(ἐντυγχάνω)로 신약에서는 다섯 번 나온다(행 25:24;롬8:27,34;11:2;히7:25). 명사 엔튠식스(ἔντευξις)는 디모데전서 2;1에서 보여지는데 4:5은 오직 '기도'로만 번역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먹으려고 준비한 '음식물'을 위하여 '도고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딤전2:3). ▪︎엔튀그카노(ἐντυγχάνω)의 사전적 의미: - 사람이나 사물에 빛을 비추다, 사.. 2023. 3. 18.
그 도(그 길),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기독교를 지칭하는 최초의 용어들 중 하나는 헤 호도스(ἡ ὁδός, 즉 '그 도(道)'라는 말이다. 이 '그 도'란 말은 성경에 모두 6회 나오는데 모두 사도행전에 나오며, 또한 사도 바울과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다. 즉 두 번은 바울이 회심하기 전 기독교를 박해할 때에 관한 기사에서 나오고(9:2;22:14), 두 번은 그가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에 사람들이 그것을 반대했던 기사에서 나오며(19:9,23), 두 번은 그가 벨릭스 앞에서 기독교를 변호하는 기사에 나온다(24:14,2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행 9:2) 이처럼 반대자들이 기독교를 '그 도'라고 불렀다는 사실은, 비기독교인들이.. 2023. 3. 14.
떡을 뗌(성만찬, 그리스의 몸에 참예함) "떡을 떼다"에 해당하는 "클라시스 투 아르투(κλάσει τοῦ ἄρτου)"란 구는 오직 누가복음 24:35과 사도행전 2;42에만 나온다. 눅 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이 단어(클라이시스, 뗌)가 동사로는, 주께서 무리를 먹이심에 대한 것으로 마가복음 8:6,19, 마태복음 14:19,15:36에 나오고, 성만찬에 대한 것으로는 마가복음 14:22(마 26:26;눅22:19 참조)에 나온다. 이 외에도 누가복음 24:30, 사도행전 2;46, 20:7,11, 27:35, 고린도전서 10:16에 나오며 성찬식의 떡에 대한 것으로 11:24에도 나온다. 그러나 이 동사가 칠십인역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히브리어 파라스(פּרשׂ .. 2023. 3. 10.
성경에서의 떡, 일용할 양식 구약에서 200회 이상 나오는 레헴(לחם)과 신약에서 약 100회 나오는 아르토스(ἄρτος)란 말은 모두 '떡' 혹은 밀이나 보리와 같은 곡물로 만든 음식을 의미한다. 떡은 하나님의 선물이다(룻1:6;시104:5). 그러나 죄로 인하여 우리는 그것을 수고함으로 땅에서 얻어야만 한다(창3:19). 창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도록 가르치셨다(마6:11). 그와 동시에 각자 자신의 양식을 얻는 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살후 3:8,12). 떡에 대한 비유적인 용법의 실례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살후 3:8.. 2023. 2. 27.
성경에서의 덕(virtue) 신약성경에는 아레테(ἀρέτη)란 단어가 5회 나온다(갈4:8;벧전2:9;벧후1;3;벧후1:5에서 2회. 영어 흠정역(AV)에는 이 단어가 '덕'으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예외로 베드로전서 2:9에서는 칭송(praise)으로 번역되었다(한글 개역엔 모두 덕으로 번역됨).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ἀρέτη)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REV의 경우에는 이 단어가 빌립보서 4:8과 베드로후서1:3에서는 '탁월함'으로, 베드로전서 2:9에서는 '훌륭한 행실'로 그리고 베드로후서 1:5에서는 두 번 다 '덕'으로 번역되었다. 이러한 번역들은 모.. 2023. 2. 26.
대제사장 '하코헨 하가돌'이 대체로 이렇게 번역되며, 문자적으로는 '큰 제사장'(the great priest)이다.(참조, 히10:21.ASV) ▪︎대제사장이라고 할 때는 '하코헨 하가돌(הכהן הגדול)' 또는 '하코헨 하로시(הכהן הראשׁ)'가 쓰인다.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히 10:21) 예루살렘의 왕이자 제사장이었던(창14:18) 멜기세덱은 구약의 기간 동안 대부분 이스라엘의 이웃 국가들에 대한 표준으로 상징되었다. 왕은 국민과 신앙 생활의 최고 두령이었고 다른 제사장들은 그의 대리인들이었다. 이 사실은 에봇과 그에 따르는 우림과 둠밈을 포함한 흉패가 보여 주는데(출28:6-30), 이러한 것들에 의해 오직 대제사장만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있었다. 그의 지위의 독특.. 2023. 2. 24.
성경에서의 환대와 대접 이 단어의 부분적인 성경상의 용법은 단순히 낯선 사람에 대한 교훈적인 동방의 관대함을 나타낸다. 아브라함(창18장)과 롯(창19장)은 먼 옛날의 표본이 된다. 낯선 사람(뜻밖의 여행자뿐 아니라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지역의 사람까지도)을 위해 특별히 준비하는 풍습이 있었다. 낯선 사람들은 히브리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는데, 그것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으며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던 경험이 있는 까닭이다(신10:18,19). 모든 정성을 다하여 낯선 자를 대접했으며(레 19:33,34), 대접하는 것은 하나의 의무로 되어 있었다(삼상25:8). 아낌없이, 그리고 온전히 대접하는 것은 대접하는 사람이 선하다는 신망을 돈독히 해 주는 것이었다(욥 31:31,32). 가끔 낯선 자를 보.. 2023. 2. 24.
대속물(代贖物) 대속물을 의미하는 기본적인 히브리어는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코페르(כּפר) ▪︎가알(גּאל) ▪︎파다(פּדה) (1)코페르(כּפר)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 속전(贖錢) 대신지불되는 것을 가리킨다. 시편 49:7(난해한 본문)은 (생명의 구속은 너무도 귀해서=역자 주) 어떤 사람도 속전을 지불함으로써는 죽음을 넘어갈 수 없다(사43:3 참조)는 것을 가리킨다. 시 49:7,8/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כּפר)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사 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2)코페.. 2023. 2. 23.
교회의 하나됨(하나님의 백성의 단일성) 단일성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아주 희귀하지만 이 용어의 배후 사상,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단일성은 아주 두들어지게 나타나 있다. 일찌기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한 사람의 조상으로부터 퍼져 나온 후손들이며, 바록 이 지파들이 후에 가서 둘로 나뉘었으나 시편 기자는 그 통일성을 찬양했으며(시133:1), 에스겔은 장차 이 두 막대기가 '하나의 막대기'가 될 것을 바라보았다(겔37:17). 시 133: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겔 37:17/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이고 자연적인 통합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으며, 이삭은 특별한 언약과 기적으로써 태어난 .. 2023. 2. 17.
그리스도 단성론(단의지론) 동방교회에 특별히 편만하였던 이단으로 그리스도는 하나의 본질만을 가졌으므로(단성론) 하나의 의지(will)밖에 가지지 않는다는 이론이다.(헬라어 모노스(μόνος)는 "홀로, 하나의"란 뜻, 텔레인(τελέιν)은 "의지를 갖다"란 뜻) Heraclius 황제는 그의 ecthesis에서 그리스도는 신인 공동의 힘으로 일하신다는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이 융합하여 제3위격을 형성한다고 주장하는 단성론(Monophysite)파 주교들을 화해시키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 절충안은 처음에 콘스탄티노플과 로마가 받아들였으나 예루살렘의 대주교가 된 Sophromius는 단의지론에 반대되는 교리를 체계화시켜 이를 반대했다. 다마스커스의 요한은 그리스도의 인격은 하나로서 두 개의 본질과 두 .. 2023. 2. 17.
두 마음을 품지 않은 구약성경의 지혜서들에서 '단순한(평범한) 사람들'(프티)이란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중간 계층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선과 악의 영향을 다 받고 있어서, 잘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에는 안전성이 필요하다. 신약성경에서 이러한 뜻으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말은 하플루스(ἁπλους)와 하플로테스(ἁπλότης)인데, 이 단어는 원래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사물을 그릇되이 판단하는 눈 대신에 옳은 눈(signle eye)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다(마6:22,23). 하나님과 재물(돈)을 겸하여 섬기려는 사람은 그 뜻이 순수하지 못한 자이다. ▪︎하플루스(ἁπλους): 한 마음, 듣는 마음, 단순한 심령, 듣는 심령을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 2023. 2. 12.
다시 살아나다, 소생하다 많은 경우에 '다시 살아나다, 소생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히야(חיה)이고 헬라어로는 아나자오(ἀναζάω)인데 문자적인 의미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 나는 것'이다. "그 아이의 영혼이 다시 그에게로 돌아오고 그가 살아났다"(왕상17:22),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살아나셨다"(롬14:9) 즉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RSV). 이 단어가 이상과 같은 의미로 쓰이지 않을 대조차도 오늘날 이 단어에는 보다 더 큰 의미가 들어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신앙 부흥운동'(revivalism)과 '복음 전도'(evangelism)를 혼동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 전도는 복된 소식이고, 소생함은 새 생명이다. 복음 전도는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고, 소생시킴(다.. 2023.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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